국회 앞 형제복지원 농성장. 형제복지원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지난해 11월 7일부터 농성 중이다.
검찰 개혁위원회(아래 개혁위)가 과거 형제복지원 판결에 대해 법원이 과거 판결을 파기하고 재판결할 수 있는 ‘비상상고’를 검찰총장에게 권고함에 따라,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움직임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개혁위는 지난 5일, 38회 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마련된 권고 사안을 13일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개혁위는 형제복지원 울주작업장 판결에서 특수감금죄가 무죄로 인정되었던 “유일한 근거인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위헌·위법성이 명백하여 관련 무죄 확정판결은 형사소송법 제441조에서 정한 ‘법령 위반의 심판’에 해당한다”면서 검찰 과거사위원회와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참조하여 해당 확정판결에 대한 비상상고 신청을 검찰총장에게 권고했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검찰권 남용으로 인권침해 사실이 밝혀질 경우엔 개혁위의 1차 권고 취지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것도 권고하였다.
형사소송법 제441조에 따르면, 검찰총장은 판결이 확정된 후 그 심판이 법령에 위반된 것을 발견한 때에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할 수 있다. 법원은 비상상고 이유가 타당하면, 위반된 부분에 대한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판결해야 한다.
- “무죄판결의 유일한 근거가 되었던 내무부 훈령 410호, 위헌·위법성 있어”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김용원 전 검사가 86년 12월경 경남 울주군 소재 작업장에서 형제복지원 원생들의 강제노역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 이들을 조사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김 전 검사는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을 특수감금(원생 168명을 울주군 작업장에 감금, 강제노역하게 한 행위), 업무상 횡령(국고 보조금 횡령 행위) 등으로 기소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 전 검사는 형제복지원 본원 내 수용되어 있던 원생 3000여 명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폭행, 감금, 성폭행, 사망 등)도 수사하려 했으나, 당시 검찰 지휘부의 거센 압력 때문에 결국 수사조차 하지 못했다. 따라서 현재 박인근 원장에 대한 판결은 형제복지원 본원이 아닌, 본원에서 60km가량 떨어진 울주작업장에 대한 판결뿐이다. 그러나 이 판결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
당시 1심 법원은 특수감금과 업무상 횡령 모두를 유죄 판결했는데, 2심 법원은 ‘주간의 특수감금 행위 부분’에 대하여는 일부 무죄를 선고하였고, 대법원은 ‘야간의 특수감금 행위’도 무죄라고 판시하며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이후 고등법원이 ‘야간의 특수감금 행위’에 대하여 다시 유죄를 선고하자, 대법원은 이에 대해 재차 무죄라고 판시하며 원판결을 또다시 파기 환송했다. 재환송 후에 고등법원은 결국 대법원판결의 기속력에 따라 특수감금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고, 이는 89년 7월 대법원판결로 확정된다. 그로 인해 박 원장에게 선고되었던 징역 10년형은 7번의 판결 끝에 업무상 횡령 범죄만이 인정되어 징역 2년 6개월로 감축된다.
당시 고등법원은 특수감금죄 무죄 선고 이유에서 “내무부 훈령 제410호가 유효한 것임을 전제로, 그에 기하여 원생들을 울주 작업장에 수용하여 출입문을 잠그는 등 이탈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한 것은 형법 제20조에 의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혁위는 이번 조사에서 당시 판결이 ‘법령 위반’이라면서, 비상상고 이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과거 판결문에서 언급하는 형법 20조가 가리키는 법령이란 적법·유효한 법령을 뜻하는 것인데, 과연 내무부 훈령 제410호가 적법·유효한 것인지 묻는 것이다.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당시 사회정화사업에 따라 부랑인을 단속·수용·보호하는 지침으로 형제복지원과 같은 부랑인 시설의 존립 근거가 됐다.
이에 대해 개혁위는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위임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 전혀 없다”면서 “결국 경찰 및 행정기관이 오로지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근거하여 체포, 구금의 방법으로 부랑인 등의 신체의 자유 등을 제한하였던 것인바, 이는 법률의 위임 없이 신체의 자유 등을 제한하는 것으로 기본권 제한에 관한 헌법상의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훈령에서 언급하는 행위가 모호하여 집행자의 자의적 판단기준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원칙으로 확립된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한다”며 내무부 훈령 제410호의 위헌성을 꼬집었다.
아울러 “위법을 범하지 않은 자를 법 절차 외의 방법으로 강제격리시키고자 시도하는 어떠한 목적도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단지 일개 행정부처의 훈령에 의하여 강제감금, 강제노역 부과 등의 조치를 한다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 제한에서의 대원칙인 과잉금지원칙에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개혁위는 “위 내무부 훈령 제410호(87. 2. 16. 폐지)는 어느 모로 보더라도 위헌·위법한 것임이 명백”하다면서 “오로지 내무부 훈령이 적법·유효함을 유일한 근거로 삼아 특수감금 행위를 ‘정당행위’로 보고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판결 및 그에 기한 확정판결은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개혁위에 따르면, 조만간 검찰 과거사위원회도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함께 내무부 훈령 제410호의 위헌·위법성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예정이다. 따라서 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 결과를 참조하여 형제복지원 사건 확정판결에 대한 비상상고를 신청할 것을 검찰총장에 권고했다.
- 비상상고 결정 환영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 ‘형제복지원특별법’ 제정해야
이번 발표에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환영의 뜻을 내비치며 문무일 검찰총장의 ‘올바른 결정’을 촉구했다.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 유가족)모임은 개혁위 발표가 난 뒤 즉시 배포한 성명에서 “죄도 짓지 않은 상태에서 공권력에 의해 신체의 자유가 의지와 상관없이 구금되는 그 순간부터가 특수감금일 수밖에 없다”면서 “당시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형제복지원 원장을 옹호하고, 전두환 대통령은 박인근 원장을 비호하기까지 하였기에 정작 다 알고 있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초기 수사조차 하지 못하고 진상규명조차 하지 못했다”며 당시 외압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또한, 기존 판결대로 내무부 훈령이 여전히 합헌이라면 “형제복지원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어야 하고 우리는 지금도 갇혀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면서 “그러나 훈령에 의해 부랑인이라고 잡혀 왔던 우리는 형제복지원에서 인권유린 당한 사실에 어떠한 진상규명과 사과도 받지 못하고 풀려났다”면서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아줄 것을 촉구했다. 현재 이들은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31일째(13일 기준) 국회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아래 형제복지원대책위) 또한 비상상고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이번 결과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비상상고는 과거 판결을 재판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형제복지원 자체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과거사정리기본법, 형제복지원특별법이 조속히 통과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형제복지원대책위는 “총체적인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과거사정리기본법(개정안)’의 조속한 통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형제복지원 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도 발의되어 있지만, 87년 당시 형제복지원과 같은 수용소가 전국에 36개나 있었고, 그 전부터 존재했던 선감학원 사건 등도 있기 때문에, ‘국가에 의한 중차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접근할 필요가 나날이 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들은 “검찰 개혁위 결정을 환영하고 문무일 검찰 총장의 권고 수용을 기대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국회가 법안 제정으로 화답해야 할 것”이라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두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