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85일간 점거했다.
장애인은 ‘합법적으로’ 최저임금에서 제외될 수 있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르면,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서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할 수 있기 때문이다. 05년 9월,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에 대한 작업능력평가가 도입되면서, 이 조항은 장애인의 일터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최저임금 적용제외 ‘신청’ 인원은 첫해인 05년도엔 140명에 불과했지만 2년 후인 07년도엔 1,000명을 넘어서 1176명에 달했고, 17년 기준으로 신청 인원은 9,068명에 이른다. 이 중 실제 적용제외를 인가받은 장애인 수는 8,632명이다. 이들 대다수는 직업재활시설(94%, 8,530명)의 한 종류인 보호작업장(85%, 7,710명)에서 일한다.
사업주가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으려면 인가 신청서를 지방노동관서에 접수해야 한다. 이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아래 공단)이 해당인에 대한 작업능력평가를 실시한다. 작업능력이 ‘매우 미흡(70%)’일 경우,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한다. 공단은 최저임금 적용 여부만을 판단할 뿐이며,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결정된 후 임금 결정은 사업주 본인이 한다. 17년 기준으로 사업주가 기재한 ‘지급하고자 하는 임금’은 보호작업장의 경우 31만 원이었다.
올해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최저임금에서 제외된 장애인의 임금 실태를 더욱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 적용제외를 받은 장애인 노동자의 평균 시급은 17년 기준으로 3102원이다. 당시 법정 최저시급인 6470원에 비해 3,368원이나 모자란다. 더욱 심각한 점은 최저임금과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받는 장애인 임금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대비 장애인 시급은 12년도엔 60.1% 수준(2790원)이었으나, 17년도엔 47.9%(3102원)로 최저임금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상태로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최저임금이 임금 인상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나, 그 법적 테두리에서 제외된 장애인의 경우엔 최저임금이 인상돼도 그만큼 임금 인상이 되지 않으니, 오히려 최저임금이 오를수록 상황이 열악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중증장애인을 위한 소득보장 정책으로 장애인연금이 존재한다. 장애인연금은 만 18세 이상 1, 2급 및 중복 3급 장애인이면 받을 수 있다. 장애인연금은 근로 능력의 상실 또는 감소로 소득 보전을 위해 지급되는 ‘기초급여’와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을 보전해주는 ‘부가급여’로 이뤄진다. 기초급여는 약 25만 원이며, 장애로 인해 드는 병원비, 보장구 구입 등을 보전하기 위한 ‘부가급여’는 소득에 따라 최대 8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즉, 기초생활수급자라면 매월 최대 33만 원가량의 장애인연금을 받는다. 그런데 17년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은 월평균 약 16만 원인데, 현재 지급되는 부가급여는 최대치가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장애인연금이 중증장애인을 위한 소득보장 정책으로 존재하지만 실제 그 역할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점거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벽면에 붙어있던 장애인 노동권에 대한 다양한 요구들.
- 독일, 프랑스, 호주 등 최저임금 안 주는 대신 ‘높은 장애인연금’으로 소득 보전
다른 나라는 어떨까. 현재 OECD 주요 국가는 일반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에겐 대부분 최저임금을 준다. 하지만 직업재활시설 같은 보호고용 영역에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들은 우리나라와 같이 일반적으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며, 일부 국가에선 ‘감액제도’*)를 운영한다. 이들 역시 임금 수준은 매우 낮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양한 사회부조(높은 장애인연금 등), 작업장 매출을 통한 임금 지급, 고용지원금, 인센티브 등을 통해 중증장애인의 낮은 임금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일본의 경우 장애인 노동자의 근로능력에 따라 임금을 감액해 지급하며 감액 특례 인정 기간은 1년에서 최장 3년까지이고, 3년이 지나면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일본은 장애인연금에 해당하는 장해기초연금 사정이 한국보다 비교적 낫다. 1·2급 중증장애인은 최저임금 대비 장애인연금 비중이 45.8%로 1급은 약 80만 원, 2급은 약 64만 5천 원을 받는다. 일본의 장애인연금은 한국의 최소 2.7배인 셈이다.
독일도 장애인작업장에서 일하는 대다수 중증장애인이 최저임금에서 제외되며 월평균 약 24만 원의 낮은 임금을 받는다. 이들의 장애인연금은 약 54만 원으로 한국보다 높으나 ‘통상적 노동시장의 여건에서 하루 3시간 이상 근로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상태’라는 단서가 붙는다. 하지만 이들에겐 사회부조(Sozialhilfe)가 있다. 사회부조는 주거비, 의료비(의료보험, 산재보험, 요양보험) 외에도 전기, 난방, 식료품, 의복, 신체 관리, 개인취미 등 일상적인 생활에 필요한 필수생활비 등으로 구성된다. 이 사회부조가 이들의 주된 소득이다.
프랑스의 보호고용 영역 장애인들은 최저임금의 55.7%~110.7%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부족분은 국가가 보호고용 기관에 지원하는 일자리 지원금(임금보존제도)을 통해 채운다. 18년 1월 기준, 국가의 일자리 지원금 최대 금액은 시간당 최저임금의 50.7% 수준이다. 이 외에도 프랑스의 보호고용 장애인은 근로시간 및 급여 등 일정 기준에 따라 성인 장애인수당(AAH)을 받을 수 있는데, 20세 이상으로 장애율이 50%인 경우에 가능하다. 이 장애인수당은 월 109만 원으로 최저임금 대비 약 55%의 비율을 차지한다. 이 외에도 장애인의 근로 능력이 5% 미만인 경우엔 약 24만 7천 원이 부가적으로 지급된다.
호주도 최저임금법에서 특정상황에선 장애인에게 최저임금 예외를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거 호주는 장애인작업장과 경쟁고용사업체를 구분해서 운영해왔다. 장애인작업장에선 당사자의 생산성과 역량을 평가하여 임금을 결정하는 BSWAT(Business Services Wage Assessment Tool) 프로그램을 적용해온 반면, 경쟁고용사업체에선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감액제도인 SWS(Supprted Wage System)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2015년부터 장애인작업장도 최저임금 감액제도인 SWS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면서 3년간 임금을 보조해주고 있다.
그와 함께 호주도 장애인 소득보전을 위한 장애인연금을 운영한다. 호주의 장애인연금은 신체손상률 20% 이상인 자로서 주 15시간 이상 근로가 불가능한 자 또는 2년 이내에 최저임금 이상의 근로가 불가능한 자를 대상으로 약 252만 원을 지급한다. 이는 최저임금 대비 27% 수준이다. 나아가 장애인작업장의 최중증장애인들은 2020년부터 국가장애보험체계(NDIS)로 편입돼 소득, 주거, 이동, 돌봄, 교육 등을 받게 될 계획이다. 호주 정부는 지원이 가장 필요한 46만 명에게 연간 약 17조 원의 지출을 예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개편 TF 2차 회의(2018.3.21)에서 “OECD 주요 국가에서도 직업재활시설 등에서 종사하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최저임금에 대한 부족분을 높은 장애인연금과 같은 공적 부조를 통해 보장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소득보전을 위한 공적 부조가 낮은 수준의 장애인연금밖에 없고, 대다수 일하는 중증장애인들도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면서 극심한 빈곤 상태에 처하게 된다.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 전체 장애인의 61.5%는 자신의 가구를 경제적으로 어려운 저소득 가구(일반 가구의 1.5배)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실제 월 평균소득도 전국 가구 평균은 361만 원으로 조사됐으나, 장애인가구는 242만 원(전국 가구 월평균 소득 대비 67%)에 불과했다.
현재 장애계는 최저임금법 7조‘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에 대한 폐지와 함께 공공일자리 1만 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장애인 노동권에 대한 요구는 결국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생존에 대한 요구와 이어진다. 그 길에 대한 구체적 해법을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_각주
* ) 최저임금 감액제도는 직업능력 등을 세분화하여 구간별로 노동자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는 최저임금 적용 여부만을 따져 사업주가 노동자 임금을 자의적으로 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