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프’ 속 장애인의 라이프
그의 휠체어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9-17 09:33:04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예전 한 의류광고의 이런 카피처럼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드라마 속 그의 휠체어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JTBC 드라마 ‘라이프’ 얘기다.
드라마 ‘라이프’의 예선우가 타는 휠체어는 그야말로 아주 신박했다. 가볍고 슬림하게 접혀서 자동차 트렁크에 가뿐하게 싣고 다닐 수 있는 휴대와 이동이 모두 편리한 전동휠체어. 우리가 언제 드라마에서 그런 신박한 휠체어를 본 적이 있던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왜 우리나라 드라마에선 휠체어가 등장할 때마다 구석기시대나 타고 다닐 법한 구닥다리 환자 형 휠체어만 등장하는 거냐고 지난 칼럼에서 투덜거린 적이 있다. 심지어 전동을 타고 나와도 ‘장애인은 도와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제작진들은 끝내 전동휠체어마저 밀어주는 장면을 집어 넣어서 참 골고루도 드라마를 망치고 있다고 궁시렁거렸다.
그런데 예선우의 스타일리쉬한 휠체어라니... 그의 휠체어를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예선우의 휠체어는 과연 협찬받은 PPL일까. 아니면 단순 소품일까.
우리나라 드라마들은 광고후원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드라마 제작여건 상 수많은 간접광고(PPL)들이 필연적으로 들어가 있다. 심지어 시대물에도 간접광고가 들어가는데 그 예로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선샤인’은 구한말 일제강점기 시대 안에 간접광고를 어떻게 녹여 넣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결국 드라마 속에는 파리바게트가 ‘블란셔 제빵쇼’로 시대에 맞게 이름을 바꾸고 다양한 제품을 우리의 시각 속으로 침투시키는데 성공했다.
드라마들의 그런 교묘한 간접광고들을 보면서 왜 아직 우리 드라마 속에서는 다양한 장애인 보조기기들을 볼 수 없는 걸까 생각했었다. 사실 최첨단 보조기기들은 일부러 관심 있게 찾아보거나 보조기기 회사에 직접 상담해서 물어보지 않으면 접하기 힘든 제품들이 참 많다.
그런데 만약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그 최첨단 보조기기들을 착용하고 나타나 준다면 회사 입장에선 간접광고 효과도 높이고 시청자 입장에선 어렵지 않게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기회가 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그럼에도 드라마 속에선 기껏해야 뒤떨어지고 촌스러운 휠체어들이 겨우 등장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등장한 예선우의 휠체어는 소비자로서 너무나 구미가 당기는 매력적인 제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뿐인가. 예선우의 집을 한번 보자. 침실과 욕실 등 집안 곳곳에 설치돼 있는 안전바들과 휠체어 사용자가 편한 자세로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싱크대, 그리고 예선우의 앉은 키 만큼 레버를 잡아당기면 내려오는 싱크대 찬장 같은 유니버설한 디자인의 집안 설계가 눈에 쏙 들어온다. 모두 휠체어를 탄 예선우의 눈높이에 맞게 예선우의 동선으로 이루어진 편리한 디자인들이었다.
이는 곧 예선우의 일상생활이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임을 보여주는 장치가 됐다. 이 역시 그동안엔 지극히 의존적인 이미지로 등장했던 기존 드라마 속 장애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휠체어를 타고 직장에 출근하는 모습, 그리고 그간 한 번도 드라마에 등장한 적 없던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퇴근하는 모습, 비장애인 형에게만 전가하지 않고 청소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등 집안에서의 역할분담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생활인의 모습뿐만 아니라 옷을 입고 벗거나 목욕 후의 일상적 신변처리 모습까지... 그저 평범한 장애인의 라이프가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장애 당사자들에게야 장애인 콜택시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을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비장애인들에게는 드라마에 등장한 장애인 콜택시가 무척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어떤 시청자는 장애인 콜택시는 그렇게 타고 내리는 거구나를 드라마를 통해 처음 알았다고 했다. 만약 예선우가 휠체어를 타고 붐비는 지하철이나 역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면 그것도 신선했을 것이다.
학창시절,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새 친구들에게 늘 받는 질문이 있었다. 너는 머리는 어떻게 감아? 목욕은 어떻게 해? 화장실에선 어떻게 해?... 등등 비장애인 아이들이면 절대 받지 않았을 질문을 나는 수없이 받으며 살았다. 비장애인 친구들에게는 자기들과는 다른 나의 일상도 상상할 수 없이 다르고 신기할 것이라 생각했었나 보다.
그럼 그런 질문들을 과연 요즘은 안 받을까? 안타깝게도 아직도 그런 질문들은 여전하다. 학교에 장애 인식개선 강의를 가면 한 시간 내내 열심히 장애에 대해 떠들었는데도 결국 아이들이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들은 학창시절 내 친구들과 다르지 않다.
만약, 드라마 속 예선우의 일상처럼 그렇게 장애인의 평범한 일상이 자연스럽게 보여진다면 적어도 그런 일차원적인 질문과 호기심은 어느 정도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드라마 ‘라이프’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나 내용에 대한 설명은 다 차치하고라도 기존의 드라마에 비해 장애와 장애인의 삶을 그려내는 진일보한 방식은 칭찬해주고 싶다. 물론 예선우와 그 가족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태도나 인식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여러 부분 있긴 하지만 굳이 이 지면에서는 예선우와 그의 유니버설한 일상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으로 그친다.
앞으로 이 드라마를 계기로 드라마를 통해 예선우 보다 훨씬 더 자립적이고 긍정적이고 평범한 장애인을 만나고 싶다. 최신 기립형 휠체어를 타고 창가에 서서 분위기 있게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라든지 계단을 아무렇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는 전동휠체어를 탄 주인공의 모습이라든지 전동휠체어를 타고 자연스럽게 운전석으로 들어가 멋지게 운전을 해내는 모습 등...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장면이 얼마나 많은가.
간접광고든 소품이든 최첨단 보조기기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드라마를 통해 장애인의 일상이 평범한 모두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면 장애는 훨씬 더 멋진 개성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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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차미경 (myrodem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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