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로 생존의 문턱을 넘나들며
지난 6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다녀왔다. “우리 야학학생 선심 언니, 살려주세요”라는 구호를 외치는 기자회견이었다. 김선심, 그녀는 나와 독립 시기가 비슷하다. 그녀가 독립한 지 얼마 안 돼서 동료 활동가들과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언니는 감옥 같았던 시설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지역사회에 나오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밤새도록 이야기했다.
이후 뜨문뜨문 언니 소식을 접해왔는데 지난 2일, 선심 언니가 온열병으로 큰일 날 뻔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찔했다. 이 지독한 폭염 속에 언니가 선풍기도 안 틀고 활동지원사가 올 때까지 12시간을 밤새 홀로 버텨왔다는 것이다. 언니는 혼자 있을 때 선풍기를 틀면, 혹시라도 가열되어 불이 날까 봐 선풍기를 틀 수 없다고 한다. 불이 나면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 아파트 전체에 피해가 갈까 봐 더 걱정되었단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언니 상황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한다. 더구나 몇 해 전, 고(故) 김주영·송국현이 집에 불이 났지만 피할 수 없어 사망한 것을 목격했기에 더 걱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언니는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힐 정도의 더운 열기 속에서 홀로 12시간을 버텼던 것이다.
언니 소식을 듣자 예전의 나의 상황이 떠올랐다. 몇 해 전, 나 역시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후에 홀로 침대에 앉아 있다가 넘어져서 얼굴이 두꺼운 겨울 이불에 파묻혀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적이 있다. 혼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나는 활동지원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똑딱똑딱 시계 소리가 귀에 울려 펴져 1초가 몇만분의 1로 쪼개진 느낌을 받았었다. 마치 신의 구원을 기다리듯, 활동지원사가 나타나주기를 밤새 기다렸다.
지난 5일, 노들야학 교사들이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김선심 씨 집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공 : 김유미 노들야학 교사)
- 활동지원 24시간이 필요하다면 무조건 제공되어야 한다
선심언닌 이제 혼자 있는 게 무섭다고 한다. 온열병으로 병원에 찾아간 날, 의사도 진단서에 ‘24시간 돌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언니는 진단서를 들고 주민센터에 긴급하게 활동지원 24시간을 요청했지만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래서 인권위에 긴급진정했고 며칠 후, 인권위는 긴급 구제에 나섰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혹시나 안 될까 봐 선심언니를 포함해서 주변 동료들이 마음을 많이 졸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활동지원 24시간 필요성이 새삼스럽게 이슈화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활동지원 24시간 지원에 대해 예산을 핑계로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엉뚱한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응급알림e, 야간순회방문서비스이다. 이중 야간순회방문서비스는 중증장애인이 혼자 있는 밤에 사회복지사가 몇 시간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인데, 이는 서비스 받는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상상해보자. 혼자 있는 것도 불안한데 한밤중에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댄다면 자다 말고 놀라서 잠을 잘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몇 시에 누가 올지 뜬 눈으로 시계만 바라보며 기다림의 대기가 이어질 것이다. 더구나 혼자 문을 열어줄 수 없는 중증장애인은 방문자에게 현관문 비밀번호를 공유해야 한다. 이보다 더 불안한 서비스가 또 있을까?
활동지원 24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생존 문제를 두고 규격화된 사이즈를 재듯이 재고 자르고 판단한다는 것은 폭력이다. 활동지원서비스가 중증장애인들의 일상 영위를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면 일상에서 필요한 시간만큼 제공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 활동지원 24시간에 다른 생각
나는 중증장애인이 활동지원 24시간을 필요로 한다면 충분히 제공되어야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사실 선심언닌 이 일이 있기 전에 활동지원 24시간을 원하지 않았다. 2015년에 서울시가 서울시민 100명에 한해 ‘활동지원 24시간’ 신청을 받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 언니는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점을 두고 주변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말한다. 선심언니의 장애 정도라면 활동지원 24시간이 안전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선심언니가 이해가 간다. 나 역시 장애 정도만 봐서는 활동지원 24시간이 필요하다. 활동지원사가 퇴근하면 똑같은 위치에서 꼼짝하지 못한다. 오른손으로 리모컨만 작동할 수 있을 뿐,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불이 나면 가만히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만 바라봐야 하며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거나 피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은 활동지원 24시간을 원하지 않는다.
-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나는 독립하기 전에 한 번도 방을 혼자 써본 적이 없다. 언니들과 방을 나눠 쓰면서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하기 어려웠다. 나는 밤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 보는 일들을 좋아하지만 언니들은 그렇지 않았다. 비밀 일기 하나 쓰기도 힘들었다. 함께 쓰는 방 안에서 비밀 일기는 순식간에 공개 일기가 되어버렸다. 언니들이 한두 명씩 결혼하면서 빈방이 생길 것 같았지만, 결국 독립 전까지 막내인 나는 내 방을 가져보지 못했다.
나는 독립한 후에야 처음으로 혼자만의 방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엔 무서워서 몇몇 비장애 활동가들이 돌아가며 같이 있어 주었다. 그렇게 한두 달 보내면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 좁은 원룸이어서 모든 게 오픈되었는데, 이러한 상황들이 부담스러웠다. 비장애 활동가들도 나 때문에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같아 ‘이제 혼자 있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혼자 잠을 자게 되었을 때 한동안은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몇 년을 불을 켠 채 잤다. 현관문 밖에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소스치게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밤만 되면 청력이 극도로 발달하는 것만 같았다.
이 모든 시간을 지나오면서 지금은 어느 때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현재 낮 동안에는 단 한 시간도 혼자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빈틈없이 타인들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장애가 심해지고 활동지원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낮에는 활동지원사가 늘 곁에 있고, 일을 하고 있으니 항상 타인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
현재 활동지원 시간을 하루 16시간씩 받고 있다. 활동지원 시간이 확대되면서 내 신변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어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되었지만 또다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동할 때면 활동지원사가 잘 따라 오고 계신지 계속 확인해야 하고, 지인과 만날 때도 활동지원사 시선을 느끼며 말을 아낄 때가 있다. 활동지원사가 여러 명이면 서로의 노동강도와 역할 분담에 대해 충돌을 일으키는 일이 많아 이를 조정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활동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제공받는 일이 아니다. 이는 타인과 시간을 나눠 쓰면서 복잡 미묘한 감정선에 매 순간 협상하고 조율하는 과정이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도 하다. 또한 활동지원사와 취향이나 생각의 차이가 있을 때면 같이 있는 게 상당히 불편하다. 아무 말하지 않고 있는 것도 불편하고 대화를 한다고 해도 서로 생각의 차이만 확인할 뿐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수십 명의 활동지원사를 만나왔지만 여전히 관계 맺기는 어렵고 고군분투 중이다.
그런데 만약 활동지원 24시간을 받게 된다면 그나마 나로 살 수 있는 시간마저 없어질 것 같다. 나의 모든 시간이 바우처란 시간 속에 기록되고 관리될 것이다. 공적인 시간 속에서 나는 24시간 동안 부정수급의 대상에 놓이게 될 것이다. 최근에 주변 사람들에게 ‘이제 혼자 있으면 위험하니까 활동지원 24시간 받게끔 노력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물론 나도 밤에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정말 24시간이 필요할 때가 되었을 때 받지 못할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혼자만의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책 ’고독의 위로‘(앤터니 스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혼자 있는 능력은 학습과 사고와 혁신을 가능하게 하며 변화를 받아들이게 하고 상상이라는 내면세계와 늘 접촉하게 하는 귀중한 자질이다.”(p.48) 나 역시 혼자 있으면 여러 생각을 하면서 삶에 대해 다른 상상을 하게 된다. 이 시간들이 내가 독립을 유지하는데 가장 큰 긍정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 나는 내가 활동지원 24시간이 필요한 날이 왔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가 많았으면 좋겠다. 장애인의 삶을 단순화시키지 말고 다양한 욕구가 좌절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