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동생과 나, 무사히 할머니 될 수 있을까요"
작성자 2018-08-0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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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동생과 나, 무사히 할머니 될 수 있을까요"
중증발달장애 동생과 함께 살며 '격리 반대' 다큐 찍은 장혜영 감독
[동아일보]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만난 장혜영(왼쪽)·혜정 자매가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한 살 터울의 자매는 지난해 6월부터 함께 살고 있다. 동생은 방 청소를 귀찮아하고, 언니는 그런 동생에게 매일같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언니 장혜영 씨(32)는 이런 자매의 일상을 ‘어른이 되면’이라는 장편 데뷔 영화로 만들고, 책으로도 펴냈다. 이들의 이야기가 조금 특별한 건 동생 혜정 씨(31)가 18년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살다 나온 중증 발달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나온 후 혜정 씨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단골 카페가 생기고, 노래도 배우고, 지인의 결혼식장에도 간다. 언니 없이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스티커 사진 찍기에도 재미를 붙였다. 좋아하는 것을 묻자 혜정 씨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팔찌, ‘반갑습니다’(북한 가요)”라고 답했다. 그는 언니와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이 세상에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장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에 나오는 음악 대부분을 직접 만들었고, EP 앨범(싱글앨범과 정규앨범의 중간 형태의 음반)으로도 냈다. 자매의 꿈을 담은 1번 트랙 곡의 제목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다.
‘언젠가 정말 할머니가 된다면/역시 할머니가 됐을 네 손을 잡고서/우리가 좋아한 그 가게에 앉아/오늘 처음 이 별에 온 외계인들처럼/웃을거야, 하하하하!’(‘무사히…’에서).
지난달 31일 만난 장 감독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당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우리의 일상을 유튜브로 전하고,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록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감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면 많은 분들이 ‘말은 좋지만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냐’고 한다”며 “저도 동생과 같이 살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장애인 시설에서 나온 동생은 사회적인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경기도에 있는 시설에서 서울의 언니 집으로 왔기에, 해당 지역에 6개월 이상 거주해야 하는 요건을 갖추지 못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언니는 동생을 돌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우리나라에는 약 3만 명의 장애인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혜영 씨는 장애인이 사회와 격리되지 않고 비장애인과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그는 “스웨덴에서는 20년 전부터 장애인 시설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스웨덴 역시 시설만이 장애인 정책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나라였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어릴 때나 나이 들었을 때, 아플 때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데,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이라고 해서 그 인생의 가치가 남보다 덜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물었다. 그는 “장애인 복지는 ‘비장애인이 베푸는 선의’가 아니라 비장애인 위주로 짜여진 세상에서 장애인이 겪는 불편에 대한 보상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출처 : https://news.v.daum.net/v/20180803030050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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