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Gnthi seauton’
신자유주의 통치체제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말라’는 명령에 따라 각자 ‘자기 돌봄’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런 폐쇄적인 자기 돌봄은 자신의 결핍과 무능력을 인정하게끔 하는 고립된 자기 인식으로 추동된다. 푸코는 신자유주의 통치체제를 떠받치는 고립된 자기 돌봄과 자기인식의 변증법을 고찰한 후 그와는 다른 방식의 자기인식과 자기 돌봄을 찾아 고대로 사유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 속에서 푸코는 ‘너 자신을 알라’의 원조인 소크라테스의 철학에서 자기 돌봄이 지닌 새로운 의미를 발굴한다. 철학자의 주권적 삶을 위한 자기 돌봄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에도 많은 가르침을 준다.
소크라테스(BC470~BC399)의 시대 ‘돌봄’으로 번역될 단어는 ‘에피멜레이아’(epimeleia)이다. 에피멜레이아란 누군가를 돌보는 활동, 가령 신이 인간을 돌보고, 폴리스의 법이 시민들을 돌보고, 지휘관이 병사 무리를 돌보고, 체육교사가 학생을 돌보고, 가장이 가족을 돌보고, 의사가 환자를 돌보는 것과 같은 활동이다. 그것은 신체를 돌보는 것과 함께 영혼을 돌보는 활동이기도 하다. 에피멜레이아는 누군가를 도와서 그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적해 주는 활동, 혹은 진실한 견해와 잘못된 견해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활동이다.1) 고대 아테네에서는 가장으로서 가정(oikos)을 돌보고 민회에 참여하여 ‘폴리스’(police)를 돌보는 것이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정치인으로서 공론장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광장이나 길거리로 나가 시민들을 찾아다니며 돌봤다.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을 돌봤다고 할 때 구체적으로 뭘 했다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의 삶, 특히 지혜를 돌봤다. 당신들의 지혜는 어떠한가? 당신들은 굉장한 지혜를 갖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자신의 지혜를 잘 돌보고 있는가? 자신의 지혜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잘 돌봐야 하네. 그게 다른 어떤 돌봄보다 중요하네.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을 붙들고 한 돌봄의 얘기는 이런 거다.
라파엘로, <아테네학당> 중 일부.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이 소크라테스.
아폴론 신전에도 적혀 있다는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명제가 갖는 의미가 여기 있다. 지혜를 통해 알아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신도 알아야 하고 자연도 알아야 하고 정치도 알아야 하고 세상사 알아야 할 게 많지만,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자기(self)’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받은 신탁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나이 40세 무렵 어렸을 때부터 절친이자 소크라테스를 무척 존경했던 카이레폰이 델포이 신전에 가서 그리스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그러자 델포이 신전의 여사제 퓌티아가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자는 없다”고 했다. 자기를 잘 아는 소크라테스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혜롭다는 사람들, 신분 높은 정치인에서부터 낮은 신분의 장인까지, 비극작가, 체육교사, 소피스트, 특히 청년들을 만나고 다녔다.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자는 없다’는 신탁을 검증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지혜를 시금석 삼아 사람들의 지혜를 검증했다. 정치에 대한 지혜, 용기에 대한 지혜, 사랑에 대한 지혜, 기술에 대한 지혜, 하여간 온갖 종류의 지혜에 대해 그들의 지혜와 자신의 지혜를 견주었다. 결론은? 신탁이 옳았다. 그들은 저마다 뛰어난 지혜를 갖고 있고, 어떤 점은 소크라테스보다 뛰어났지만 딱 한 가지 지혜에 있어서는 소크라테스보다 뛰어난 자가 없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에 대한 지혜이다. 자기의 무지에 대한 지혜, 자기의 지혜에 대한 반성적 앎에 있어서 소크라테스보다 뛰어난 자는 없었다. 그들은 대상에 대한 지혜가 전부라고 여기며 한껏 뽐내고 가르치려 드는데 정작 자기에 대한 지혜는 부족했다. 그래서 그들의 지혜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한곳에, 이를 테면 전통이나 관습, 통념에 붙들려 있었다. 나는 나의 지혜만이 아니라 나의 무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혜로운 자, 지혜의 교사, 소피스트(sophist)가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자, 지혜를 갈구하는 자, 필로소피스트(philosophist)이다. 이것이 소크라테스를 통해 ‘필로소피아’란 단어가 서구 역사에서 출현한 맥락이다.
자기 돌봄과 민주주의의 통치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의 알라’는 물론 겸손하라는 의미가 있지만 더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자기에 대한 앎은 자기 돌봄을 위해, 자기 돌봄 속에 있다. 자기를 알아야 자기를 잘 돌볼 수 있다. 자기의 몸에, 자기의 영혼에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과도한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를 잘 돌볼 수 있고, 그래야 타인도 잘 돌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자기 돌봄이 특히 필요하다고 강조한 사람은 타인을 돌보아야 하는 사람들, 타인을 통치하고자 하는 사람들, 타인을 돌볼 나이가 된 사람들이다. 아테네에서 모든 자유인은 가장으로서든 정치인으로든 타인을 돌보는 자이다. 소크라테스는 타인을 돌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돌봄이라고 역설한다. 자기를 돌볼 줄 모르는 자가 타인을 통치할 때 그 통치는 무절제해지고 무원칙해지며 결국은 무력해진다. 소크라테스가 자기 돌봄의 중요성을 설파한 정치적 맥락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아테네 민주정이 원래의 건강과 진실성을 잃고 무절제한 애국심과 무원칙한 논쟁으로 타락하고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아테네 민주주의가 쇠락한 것은 타자의 돌봄에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델로스 동맹을 이끌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테네는 다른 폴리스와의 관계에서 제국주의적 기생성을 띠게 된다. 아테네의 전성시대를 이끈 페리클레스(BC495~429)는 델로스 동맹에 내는 각국의 세금을 유용하여 아테네 시민에게 의회 출석 일당으로 배분했다. 또한 솔론과 달리, 상업에 주로 종사하는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았다. 아테네에서 데모스가 정치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들이 전함의 노잡이로서 폴리스에 공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이 된 후에는 민회에 참석하고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농업, 상업 같은 생업을 외국인이나 노예한테 맡겼다. 많은 시민이 노예에게 농장 일을 시켰고, 은 광산에 빌려주기도 했다. 아테네 ‘폴리스’의 민주주의는 생계 노동을 외국인과 노예의 노동으로 아웃소싱 함으로써 유지되었고, 그런 아웃소싱은 국외로 확장되어 다른 폴리스에 대한 제국주의적 착취에 의존하는 민주정으로 타락케 했다.
민주주의와 전쟁은 양립하기 힘들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에 민주주의 동맹을 수호한다는 의미가 남아 있을 때, BC429년 페리클레스가 전염병으로 죽었을 때, 혹은 BC421년 스파르타와 휴전협정을 맺었을 때 전쟁을 끝냈어야 했다. 그러나 아테네 제국을 그리워하던 민주파는 휴전 협정을 파기하고 반스파르타 동맹을 강화하다 BC418년 만티네아 전투에서 크게 패한다. 초조해진 아테네는 BC416년 아테네에게 영원히 오점이 될 치명적인 결정을 내린다. 스파르타에 군사 지원을 하고 있었지만 직접 참전하지는 않은 작은 섬나라 멜로스를 포위한 후 스파르타 지원을 포기하든지 몰살당하든지 선택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낸 것이다. 멜로스는 협박에 굴하지 않았고, 아테네의 민회는 순전히 자존심 때문에 멜로스의 성인 남자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아버렸다.
불과 10년 전인 BC427년만 하더라도 비슷한 이유로 함락된 뮈틸레네에 대해 아테네는 달리 대했다. 그때도 아테네의 민회는 뮈틸레네의 성인 남자를 모두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삼기로 결정했다. 민회는 뮈틸레네에 있는 아테네 주둔군에게 이 결정을 알리기 위해 연락선 한 척을 보냈다. 그러나 다음날 민회는 자신의 결정이 너무 가혹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에 다시 심의했다. 찬성 토론자인 클레온은 강력한 대응만이 제국을 유지하는 길이라며 “변함없는 악법을 운용하는 나라가 불안정한 좋은 법을 운용하는 나라보다 낫습니다.” 라고 웅변했다. 나중에 소크라테스에게 뒤집어 씌워진 “악법도 법이다”는 그의 웅변은 다행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의와 관용을 외친 무명의 시민 디오도토스의 연설에 아테네 시민 대다수가 공감했다. 민회는 급히 다른 연락선을 띄워 전날의 연락선을 따라잡아 대학살을 막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테네 민주주의는 살아 있었다. 자신의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고, 자신의 오류를 교정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고, 전날의 메시지를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가 있었다. 전쟁이, 패배가, 초조함이 국가주의를 강화했고, 제국주의적 기생성 속에서 민주주의는 타락했다.
소크라테스가 민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아테네의 전통적 방식을 포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아테네의 공론장은 더 이상 진실을 받아들일 역량이 없었다. 민회 대신 소크라테스는 길거리로 나가 시민들 한명 한명을 붙들고 우선 자기를 알아야 하고, 자기를 돌볼 줄 알아야 한다고, 자기를 통치할 수 있어야 타자도 잘 통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기 돌봄을 통해 그가 강조한 것은 자립 능력이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노예의 노동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동맹국의 세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돌볼 수 있어야 비로소 남을 통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남을 돌보는 것도 그 남의 자기 돌봄을 위해서이다. 소크라테스는 시민들을 돌봄으로써 그들이 자기를 돌볼 수 있게 했다. 즉 그들의 자기 돌봄을 돌본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자기 돌봄을 얼마나 중시했냐 하면, 사약을 마시고 죽어 갈 때 친구 크리톤이 “우리에게 부탁할 말은 없는가? 자녀에 대해서나 우리들이 해줄 수 있는 다른 문제에 대해서든지.” 하고 물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크리톤, 특별히 부탁할 것은 없네. 오직 한 가지, 내가 자네들에게 늘 말한 것처럼, 자기 자신을 돌보게” 라고 했다.
자녀를 돌보는 것에 대한 대답은 『변론』에 자세히 나온다.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들 생각에 그들이 덕성보다도 재산이나 그 밖의 것들에 더 마음을 쓰는 것(epimeleistai) 같으면, 내가 여러분들을 성가시게 한 것처럼, 그 아이들을 성가시게 해서 보복해 주기 바랍니다.2)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에게 자기가 그들의 엉덩이에 붙은 등에처럼 귀찮게 했듯이 자기 아들에게도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내 자식들을 잘 돌봐 주시오. 그놈들이 자기를 잘 돌보도록 부디 등에처럼 성가시게 해 주시오. 소크라테스에게 자기를 돌보는 것과 타인을 돌보는 것은 뫼비우스 띠처럼 순환한다. 자기를 돌볼 줄 알아야 타인도 돌볼 수 있다. 타인을 돌본다는 것은 그 스스로 자기를 돌볼 줄 알게 하는 것이다.
탈시설 장애인의 자기 돌봄
소크라테스의 이런 가르침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에도 유효하다. 자립한다는 것은 자기를 타인의 돌봄에 전적으로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며, 자기 돌봄의 주체로 자기를 세운다는 것이다. 그것은 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스물아홉에 감기바이러스로 경추 장애 판정을 받은 故지영 활동가는 철원에 있는 요양원에 입소했다. 요양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가 마주한 것은 거주인들에게 직원들이 행하는 결박과 욕설, 일상화된 폭력과 ‘돼지밥 같은’ 식단이었다. 지영 활동가는 여기에 순응하지 않고 다른 거주인들과 함께 1년여에 걸쳐 투쟁했다. 그 결과, 9시 넘어 TV보기, 직원들과 동일한 식단 제공받기, 짜장면 시켜 먹기, 머리 기르기, 라면 먹기, 교회 가기, 컴퓨터방 만들기 등 시설 밖에서는 당연하지만 시설 안에서는 파격적인 변화들을 일궈냈다.
하지만 일상이 주어져도 시설은 시설이었다. 그녀는 2004년, 아직 활동보조 제도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굶어 죽어도, 얼어 죽어도 내 선택이다. 그게 인간이다” 라며 탈시설을 선택했다. 활동지원인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를 구하지 못하는 날엔 굶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만끽했고, 이것을 혼자만 누려선 안 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지영 활동가는 시설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유의 공기를 불어넣었다.3)
탈시설 자립생활운동가 故지영 씨.
푸코에 의하면, 고대의 자기 돌봄 문화에서 특징적인 점은 자기 돌봄에는 반드시 다른 누군가의 도움과 지도, 즉 돌봄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홀로 자기를 돌볼 수 없다. 자기 돌봄에는 반드시 타인의 도움과 돌봄이 필요하다. 자기 돌봄을 도와주는 사람의 모습은 다양하다.
그 사람은 전문적인 철학자일 수도 있지만 문자 그대로 ‘아무나’여도 상관없습니다. 그는 제도적인 교육 시스템에 속해 있는 교사일 수도 있고(에픽테투스는 학교를 이끌었습니다.) 단지 사적으로 친한 사람일 수도 있으며, 또 연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젊은이, 즉 아직 자기 인생의 근본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 아직 자기 자신에 대해 온전한 주인이 되지 못한 젊은이를 위한 일시적인 지도자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평생을 따라다니며 지도하는 영구적인 조언자일 수도 있습니다.4)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돕기 위해 활동지원인 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런 취지이다. 활동지원인은 가족을 대신해서, 시설을 대신해서 장애인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아니다. 활동지원인은 장애인의 자립생활, 즉 장애인의 자기 돌봄을 지원해주는 사람이다. 처음 장애인 활동지원인 제도 요청을 받은 공무원들이 그건 비서가 아니냐고 했을 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장애인을 아래에서 돌봐주는, 즉 서비스(service)를 제공하는 하인(servant)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장애인의 자기 돌봄을 지원해주는 노동자라는 점에서 틀렸다. 그러나 장애인의 명령을 받는 자 장애인의 통치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맞다.
장애인은 활동지원인에게 명령을 내리는 통치자이다. 소크라테스가 통치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자기 돌봄 능력이라고 한 것처럼 활동지원 ‘이용자’로서 장애인에게도 자기돌봄 능력이 필요하다. 장애인은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 잘 알아야 한다. 장애인은 자기 돌봄의 선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활동지원인에게 무엇을 도와 달라고 할지 잘 명령할 수 있다. 당연히, 활동지원인은 로봇도 아니고, 하인도 아니다. 그는 장애인의 자기 돌봄을 인도하는 자이다. 그에게는 부모의 인내력과 교사의 테크닉과 철학자의 지혜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장애인의 자기 돌봄을 인도하는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대로, 타인을 돌보는 자로서 활동지원인은 우선 자기를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시설에 살던 발달장애인 동생을 데리고 나와 함께 살기 시작한 다큐멘터리 작가 혜영 씨는 장애인 형제를 둔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 조금 더 골몰했으면 좋겠다”고 꾹꾹 눌러 말한다.5) 활동지원인들이 자기 삶을 돌보기 위해 노조를 만들어 활동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남을 돌보는 자는 우선 자기를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자기를 돌본다는 건 생계를 돌본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꼭 철학자가 아니어도 자기 삶에 대해, 특히 장애인의 삶과 깊이 연루된 자기에 대해 철학적으로, 지혜를 갈구하는 태도로 성찰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와 함께 장애인의 자기 돌봄도 잘 돌볼 수 있다.
주권적 삶을 위한 파레지아
푸코는 고대 자기 돌봄의 문화에서 돌보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파레지아(parrhēsia)’라고 한다. 파레지아란 어원 상 모든 것을 말하기(pan rēma), 솔직하게 말하기, 자기의 진실을 남김없이 말하기를 뜻한다.6) 원래 ‘파레지아’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로서 자유인이 공론장에서 자기가 생각하는 진실을 자유롭게 말하는 권리 내지 역량을 가리켰다. 소크라테스의 시대 민주정에서 더 이상 파레지아가 불가능해지면서 파레지아는 철학자의 덕목이 되었다. 시민의 덕목이든 철학자의 덕목이든 자기의 진실을 자유롭고 솔직하게 말하기, ‘파레지아’는 통치하는 자, 돌보는 자가 갖춰야 할 핵심 자질이다.
82년 강의 『주체의 해석학』에서 푸코는 헬레니즘 시대 자기 돌봄의 지도자가 지녀야할 덕목으로서 파레지아의 기술적(technic) 의미를 탐색한다. 세네카는 파레지아를 아첨과 대비해서 설명했다. 아첨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없게 방해한다. 그래서 진실의 쓴 소리가 필요한데, 그를 통해 듣는 이가 타자의 아첨을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파레이지아를 통해 듣는 이가 자기의 진상을 알게 하는 게 핵심이 아니라, 그가 타인의 아첨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의 진실을 낚을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7)
미셸 푸코
헬레니즘 시대 파레지아의 사용에서 강조된 것은 카이로스(kairos), 즉 때를 맞추는 것이다. 카이로스는 그 이전과 이후를 다르게 하는 결정적 순간을 일컫는 말로, 파레지아에서 때가 중요한 이유는 영원한 진실이 목적이 아니라 주체의 변형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진실한 말이라도 듣는 이의 변화를 이끄는 때가 있다. 파레지아의 진실성은 그 때를 맞추는 것에 있다. 활동지원인이 장애인 이용자에게, 장애인 이용자가 활동지원인에게 파레지아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를 위해 새겨 두면 좋을 얘기다.
83년 강의 『자기와 타자의 통치』부터 푸코는 파레지아의 윤리적 의미에 주목한다. 소크라테스의 말이 진실한 것은 그의 말이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게 아니라 그의 말이 그의 삶과 조화롭기 때문이다. 그는 남들한테만 자기 돌봄을 권한 게 아니라 누구보다 철저하게 자기 돌봄을 실천했다. 그는 자기를 단련했고, 그래서 강건했다. 그는 술자리에서 항상 마지막까지 있었지만 한 번도 술에 취해 비틀거린 적이 없다. 그는 전쟁에서 후퇴할 때 가장 뒤에서 적을 보며 다친 친구를 끌고 천천히 물러설 줄 알았다. 그는 “얼어붙는 추위도 개의치 않고 아침밥도 원치 않으며, 술과 포식과 그 밖의 어리석은 일들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의존적이지 않은 자유인의 삶을 위해 금욕을 실천했다. 좋은 옷과 좋은 음식과 좋은 집에 대한 욕구에 휘둘리면 그만큼 타인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고, 원치 않는 일도 해야 하고, 진실하지 않은 말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주 “나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치 않은 것일까? 은 접시도, 자줏빛 옷도 비극작가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살아가는 데는 쓸모없는 것들” 하며 중얼거리곤 했다. 소크라테스는 주인된 자의 자립능력을 가르쳤다. 어느 날은 자기 하인을 몹시 야단치고 있는 사람에게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이 자는 먹기만 하고, 아무것도 조심하지 않으며, 돈을 무척 탐내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그대는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맞아야 하는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그대인가? 그대의 하인인가?” 라고 반문했다.
그래서 철학자의 진실한 말(파레지아)은 철학적 삶, 혹은 진실한 삶이라는 주제로 전개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자기 돌봄은 이후 플라톤의 계열과 안티스테네스를 통한 디오게네스의 계열로 분기되었다. 플라톤의 철학은 자기를 돌봄에 있어서 자기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의식에 천착하여 자기의 ‘영혼’을 돌보는 형이상학으로 발전했다. 반면에 디오게네스의 철학은 자기를 돌보는 삶이란 어떤 삶인가? 라는 문제의식에 천착하여 관습과 도덕에 얽매지 않는 실존의 미학으로 발전했다. 디오게네스와 견유주의자들은 소크라테스의 금욕적인 삶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 망토와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또 디오게네스는 소크라테스의 통념에 굴복하지 않는 삶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 국가의 법도, 전통적 관습이나 도덕에도, 다수의 통념에도 예속되지 않고 오직 자연의 이치에 따른 올바름을 추구했다.
그래서 견유주의자의 철학적 삶은 개와 같은 삶(bios kunikos)이 되었다. 그들을 ‘퀴니코스’(개 같다)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개에 부여된 비루함, 부끄럼 없음, 부도덕함과 같은 부정적인 가치를 긍정적인 것으로 전도시켰다. 견유주의자들은 비루해 보일 때까지 가난한 삶을 실천했다. 그래서 그들은 즉각 충족될 수 있는 욕구를 제외한 그 이상의 어떤 욕구도 갖지 않는 집착 없는 삶, 그래서 개와 같은 삶을 살았다.
그들은 자연적 본성에 따른 삶, 동물적 삶에는 부끄러워할 게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먹는 것에서나 스스로 성욕을 충족시키는 것에서나 모두 공개적으로 했다. 그들은 국법이나 관습, 도덕에 의존하지 않는 자율적 삶, ‘노모스(nomos)’에 있어서도 자립적인 삶, ‘아우토노모스’(auto-nomos)한 삶을 살았다. 보편적 자연법을 기준으로 올바름과 그름, 주인과 적을 구별할 줄 알고 또 적에 대해 용감하게 짖고 물어뜯는 삶이라는 점에서도 그들의 삶은 개 같은 삶이었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에도 그런 면이 있다. 시설에 갇힌 장애인의 개 같은 삶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개가 아니다.’ 라며 탈시설한 투쟁에 나선 장애인의 삶에도 ‘키니코스’한 면이 있다.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정상성’에 근거한 ‘인간적’ 삶에 가둬선 안 된다. 거기에는 정상과 비정상,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선 위에서 ‘짖어대고’ 그 경계선에서 생기는 차별과 배제의 장치들을 ‘물어뜯는’ 견유주의적 전투성이 있다. 그것은 단지 사회에 편입되는 게 아니라 시설을 필요로 하는 사회 자체를 바꾸는 삶, 장애인의 자립을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가치 체계를 전복시키는 삶이다. 달리 말해서 그것은 왕따에게도 한자리 내 주는 문제가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법을 바꾸는 문제이고,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구분법을 바꾸는 문제이며, 물리적 문턱과 감각의 문턱, 주체성의 문턱과 관계의 문턱을 재조정하는 문제이다.
에픽테토스는 견유주의자를 인류 전체를 위한 정찰견(kataskopos)에 빗댔다. 견유주의자는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인간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인류보다 앞서 보내진 정찰병이기 때문이다.8)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생활에도 이런 면이 있다. 도저히 혼자 살 수 없을 것 같은 중증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해 나갈 때, 의사결정은커녕 의사표현조차 못할 것 같은 발달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때 그것은 인류의 역량, 사회적 역량의 한계치를 매번 갱신하는 것이다.
탈시설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위해 싸우는 것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문제를 갖고 있는 집단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이 가진 무지와 권력과 게으름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하는 문제를 훨씬 더 예민하고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노들장애인야학이 장애인을 도우러 온 사람을 맞이할 때 항상 다음 문구로 시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멕시코 치아파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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