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에 대한 그릇된 일반화 경향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의학적 모델이다. 의사, 연구자, 재활전문가들은 특정 질병이나 장애의 경험을 한 가지로 보편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람들의 경험을 질병이나 장애에 끼워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 중에서)
위와 같은 장애에 대한 편견은 장애인의 일상 어느 곳에서나 나타나지만, 특히 장애인이 문화적인 행위에 나설 때 더욱 강력하게 드러난다. 애초에 장애인은 무언가를 ‘할 수 없는 몸’이라고 여기고, “장애가 있음에도 이만큼이나 해냈다”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장애인이 자신의 창조적인 노동을 투여해 만들어낸 예술 행위조차도 한낱 치료와 극복의 서사로 읽힐 수밖에 없다.
10일 서울시 인권위원회 주최로 열린 ‘서울시 장애인 문화·예술권 확보를 위한 쟁점과 대안’ 토론회에서는 그간 서울시의 장애인 문화예술정책 또한 이런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왼쪽),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조정실장(오른쪽).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그간의 '문화권' 논의가 '문화에 대한 접근권'에 국한되어왔다는 점을 비판하며, 장애인을 문화의 적극적 생산자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무국장은 “문화권을 보장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시간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냐는 문제, 즉 임금을 주는 형태로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냐는 문제와 직결된다”라고 강조했다.
장애인의 문화예술 창작 활동을 단지 비장애인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기 위한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차별받았던 자신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정치적 행위로 인정하고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목표에 비춰봤을 때 서울시의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 예산은 ‘복지’ 차원에서 제공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규모 역시 극히 미미했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조정실장은 서울시 문화예술과의 장애 관련 예산은 문화예술과 전체 예산의 2.08%(약 10억 원)에 그친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나마 이 중 대부분은 국비 매칭사업인 ‘통합문화이용권 지원 사업’으로, 이를 제외한 시 자체 사업 비중은 0.87%에 그친다.
게다가 서울시 출연기관인 ‘서울문화재단’의 경우 2018년 예산 중 ‘예술창작 활성화’에 해당하는 예산(약 160억 원) 대비 장애예술가 창작 레지던시 공간인 ‘잠실창작스튜디오 운영’ 예산 비중은 2.7%에 그친다. 반면 청년예술지원 예산은 이의 2배 규모이다.
조 정책조정실장은 “서울시의 장애인문화예술 정책은 문화향유와 교육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창조적인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정책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예술인과 예술단체의 창작 활동은 일상적 단체운영과 작품 구상 및 집필, 연습, 리허설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으로 이어지는 것이기에 ‘단연도 지원’, ‘소액 다건’ 지원방식은 창조적 역량 강화 및 저변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며, 서울시의 장기 지원을 주문했다.
최재호 장애인문화공간 대표 또한 “지금처럼 보조금을 받지 않고 하나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선정이 되어 사업을 진행하는 형태로 간다면 장애인 예술인의 삶은 안정적인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불안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장애인 예술인이 하나의 생계로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장애인문화예술단체도 자립생활센터처럼 국가 또는 지자체로부터 사업비와 운영비를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와 같은 제안에 대해 류경희 서울시 문화예술과 예술정책팀장은 대체로 공감하면서 장애인 예술지원 정책 강화의 뜻을 전했다. 류 팀장은 “장애인극단이 연습하는 모습을 직접 보니, 인력이나 연습 시간 등을 고려했을 때 최소 1.5~2배 이상의 비용 지원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면서 “잠실창작스튜디오의 장애인 예술인 지원이 아직 부족하지만, 그것을 씨앗 삼아서 앞으로 지원을 계속 늘려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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