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통치와 자기 돌봄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1976)에서 푸코는 생명권력의 출현과 함께 개인의 섹슈얼리티가 국가의 통치 대상으로 부각된 역사를 고찰했다. 그러면서 푸코의 관심은 자기를 통치하는 문제, 특히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기 통치’의 문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통치형식에 대한 79년의 강의에서 ‘자기 통치’에 대한 문제의식은 한층 더 구체화된다. 신자유주의 통치는 국가의 통치를 최소화 하고 개인이 시장의 법칙에 따라 스스로 통치하게 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과에 대한 보상이나 실패에 따른 리스크를 통해 통계적 정상성 안으로 유도하지만, 어쨌든 개인의 자기 통치를 촉진한다. 이때부터 푸코는 ‘통치’(government)란 단어를 정치적 의미에 국한하지 않고, 생명(삶, life)을 특정한 방향으로 ‘지도하다’, ‘이끌다’, 특히 ‘돌보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타인의 생명을 돌보든 자신의 삶을 돌보든, 정치 영역에서 돌보든 가정에서 돌보든, 몸을 돌보든 영혼을 돌보든, 의사·교사·목사 같은 직업으로 돌보든, 일상생활에서 돌보든, 모든 ‘돌봄’이 곧 ‘통치’이다.
『성의 역사 2: 쾌락의 활용』과 『성의 역사 3: 자기의 돌봄』은 고대 그리스와 초기 로마 사회에서 섹슈얼리티의 통치가 자기 돌봄의 주도적 형태로 이뤄져 왔음을 고찰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쾌락을 제공해 주는 행위나 몸짓, 접촉’을 가리키는 말은 ‘아프로디지아’(아프로디테에 관한 일)이다. ‘아프로디지아’에서 중요한 것은 행위와 쾌락과 욕망을 연결하는 힘의 크기와 관계이다. 즉 아프로디지아에서 좋고 나쁨은 쾌락의 본성에서 오는 게 아니라, 역관계 상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 힘의 사용이 과도하냐(낭비) 절도 있냐 하는 기준으로 평가된다. 쾌락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쾌락을 활용함에 있어서 시의적절함이나 주체의 사회적 지위에 걸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로 이뤄지지 쾌락 자체의 ‘악함’이나 ‘병리성’을 묻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식욕에 대해서처럼 성욕에 대해서도 ‘절제’를 중시했으나, 그것은 도덕 때문이 아니라 육욕에 대한 자기 지배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성애의 윤리는 성적 활동 속에서 ‘자유를 양식화’ 하는 것이다. 자유를 양식화 한다는 것은 법적 권리로 자유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능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몸과 영혼과 행위의 상태를 갖춘다는 의미이다. 그리스인들에게 자유는 ‘권리’ 이전에 자기 내적 ‘역량’으로, 자유를 증가시키는 것이 에토스(ethos), 즉 ‘존재양식’을 갈고 닦는 윤리적 실천이다. 그리스인들은 윤리적 자유가 정치적인 자유로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어찌 그리 단순할 수 있냐, 그래도 법과 규칙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많은 경우 이런 자유의 양식화 능력, 자기 통치의 역량이 소진될 때 개인이든 집단이든 외적인 법과 규약을 요청하게 된다. 좀 더 적극적인 기능으로 법은 마치 줄넘기 할 때의 줄과 같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없어도 되지만 있음으로써 자기 통치 운동에 일정한 리듬을 부여하고 통치 역량을 조금씩 증가시키는 기능을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프로디지아에 대한 관심은 자기 통치의 일환이기 때문에 성적 대상에 대한 배려나 도덕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가령, 성관계는 결혼제도 안에 제한되어야 한다는 도덕이나 부부관계의 충실성에 대한 도덕은 그리 강조되지 않았다. 간통은 분명 불법이었지만, 그것은 다른 시민(남성)의 ‘가정(부인)에 대한 통치권’을 침해했기 때문이지 자기 아내에 대한 충실성의 원칙 때문이 아니다. 성행위는 이성 관계에 제한되어야 한다는 원칙도 절대적이지 않았다. 동성애에 대해 허용적인 것도 대상이 누구냐 하는 것보다 그 관계에서 자기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주된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다만 동성애에서는 자기 돌봄뿐 아니라 대상에 대한 돌봄도 중시되었다. 왜냐하면 동성애의 파트너 역시 자기를 돌봐야 하는 주체인 남성이기 때문이다. 파트너가 소년이었을 때는 스승으로서의 통치와 애인으로서의 능동성이 일치하지만, 언제까지 그를 수동적 상태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가 성인의 나이가 되면 그 역시 능동적인 성애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 (동성)연애 관계를 끊어야 하는지,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그 후 소년은 어떻게 자유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섬세한 고찰이 필요하다. 성애 관계에 내재한 정서적 몰입의 위험, 상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의 위험, 우정과 사랑, 사랑과 예속의 경계 설정, 불성실과 매음의 비윤리성,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법, 관계를 끊는 시기와 방법 등 현대에는 주로 이성애 관계에서 고려되는 ‘연애술’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주로 동성애 관계에서 고민되었다. 오늘날의 동성애에서도 이런 연애술이 필요하긴 마찬가지다. 푸코가 섹슈얼리티의 통치에서 자기통치의 문제, 윤리의 문제를 강조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성의 역사 3: 자기의 돌봄』은 헬레니즘 시대의 성애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원 후 2세기로 오면서 자기 돌봄의 성애술은 더욱 엄격하고 보편적인 윤리학으로 발전했다. 고대 그리스의 자기 돌봄에서 중시된 ‘절제’의 미덕이 헬레니즘 시대에는 ‘금욕’의 미덕으로 더욱 엄격해졌다. 몸에 좋고 나쁨이 더욱 강조되어 자기 훈육을 위한 금욕이 강조되었다. 특히, 시선과 빛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성욕은 자기 몸을 해치는 것으로 비난받았다. 쾌락을 목적으로 추구하지 말라는 충고가 범람했고 성행위의 규범이 양생술의 일반규범 중 특화되어 강조되었다. 철학자가 결혼을 하는 게 좋은지 안 하는 게 좋은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스토아학파는 철학자가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게 좋다고 했고, 견유학파는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하는 현자의 예외성을 고려할 때 철학자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현자의 이런 예외성은 기독교 사목제도에 전수되어 목자의 예외성, 목자의 순결성, 목자의 희생을 통한 만인의 구원이라는 초월적 관념으로 굴절, 변형되었다. 그러나 헬레니즘 시대 견유주의자들의 금욕은 복종을 위한 자기 포기가 아니라 자기 돌봄의 주체가 되기 위한 역량 강화의 수단이었다.
고해성사와 자기인식
『성의 역사 1』에서 푸코는 섹슈얼리티 통치에서 성에 대한 진실(지식)이 생산되는 장치로서 ‘고백’의 역사를 고찰한다. 순례자의 ‘참회’ 의식과 ‘고행’의 일환이던 고백이 기독교 제도로 자리 잡은 것은 13세기 스콜라 철학의 시대였다. 성직자의 권한을 강화하면서 일반신자는 적어도 1년에 한번, 성직자들은 한 달에 한번, 혹은 한 주에 한번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하는 제도가 생겼다. 자기 마음대로 아무데서나 아무거나 고백(참회)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또 고행으로 고해를 대신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사제에게 와서 특정한 양식에 맞춰 고백하고 사제를 통해 용서받아야 한다. 두 번째 비약점은 16세기의 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에 대응하여 카톨릭은 부흥을 위해 ‘양심지도’ 제도를 발전시켰다. 그 중심에 고해성사의 확대 개편이 있다. 고해실이 처음으로 언급된 것도 이 시기 1516년이다.
영화 <신부수업> 중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 본문 내용과 무관.
고해성사가 확대되면서 고백의 절차와 방식이 바뀌었다. 개혁의 초점은 조심성이다. 13세기부터 고백의 내용은 주로 성 행위와 관련된 죄였다. 간음과 간통에 관련된 죄, 합법적 성관계로 귀착되지 않는 애무와 자위행위, 자연스럽지 않은 성행위인 동성애, 근친상간, 수간 등이 고백해야 할 죄의 내용이었다. 16세기 양심지도술에서는 고백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말의 유혹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고백할 때는 반드시 말을 아끼고 조심해서, 암시적이고 비유적으로 표현하게 했다. 또 고백할 사항도 직접적인 성 행위가 아니라 그런 행위 주변의 몸가짐과 자질구레한 행동들, 느낌들, 생각들로 간접화 했다. 조심성에서 비롯된 이런 간접화는 고백해야 할 죄목을 따로 정하지 않고 삿된 행위를 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들, 모든 일상행위들과 특히 육욕적인 생각과 욕망에 대해 전부 말하게 했다.
그때부터 서구는 고백이 유별나게 행해지는 사회가 되었다. 고백은 성에 대한 진실, 개인에 대한 진실을 산출하는 가장 중요한 기법이 되었다. 고백을 통한 진실은 사법, 의학, 교육, 가족관계, 애정관계, 일상생활과 일상 의례 속으로 퍼져나갔다. 자신의 범죄와 과오를 고백하고,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고백하고, 자신의 과거와 미래의 꿈, 몽상과 환상을 고백하는 것이 권장되고 의무화 되었다.
고백이 진실을 산출한다는 것은 고백을 통해 자기를 안다는 의미다. 고백은 자기에 대해 말함으로써 자기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는 담화 장치이다. 자기를 아는 것, 자기를 인식하는 것이 고백의 철학적 가치다. 푸코에 의하면, 고백이라는 담화 장치를 통해 근대 철학이 형성되었다. 데카르트, 칸트, 헤겔 같은 근대 철학은 진리 산출의 기술로서 고백을 승인했다. 근대 철학에서 진리는 의심하는 자기를 인식함으로써(코기토, cogito) 열리며, 인식하는 자기의 선험적 형식에 의해 포착되고, 자기의식을 향한 정신의 운동을 통해 산출된다. ‘자기를 아는 것’, ‘자기 인식’이 진실(진리)의 지배적 형식이 된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의 나쁜 사례
푸코가 고백을 자기 인식의 장치로 제시한 것은 자기 인식의 통치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기독교의 통치권력, 즉 사목권력의 진실장치로서 고백은 통치자, 즉 목사의 권력을 강화하면서 제도화 되었다. 고백에서 진실을 산출하는 자는 말하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 고백의 말을 듣고 거기서 죄의 씨앗을 발견하고, 판결하고, 구원하는 자이다. 그 결과 고백은 듣는 자, 즉 자기를 해석하고 구원하는 자에게 복종하게 만든다. 고백을 통해 알게 된 ‘자기’는 듣는 자를 통해 해석된 자기, 듣는 자의 평가 틀에 여과된 자기이다. 고백을 통한 자기 인식은 타자의 틀에 맞춰진 자기 인식을 요구한다. 그런 자기 인식은 결과적으로 자기의 왜소함, 자기의 보잘 것 없음, 자기의 오류와 죄의 인식으로, 자기를 포기하고 타자의 기준에 복종하도록 유도한다. 자기 인식의 가장 고대적인 표현 ‘너 자신을 알라.’가 ‘네 주제를 알고, 까불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 <파란 입이 달린 얼굴>(2018)은 ‘너 자신을 알라’는 명령어에 포획된 소수자들의 파국적인 자기 돌봄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제목도 특이하고 서사도 특이하고, 무엇보다 수상 이력이 특이하다. 감독 말마따나 “살짝 맛이 간 여자”의 서슬 퍼런 생존의지를 그린 이 영화가 2016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새로운 물결’ 부문에 초청되고, 같은 해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한 것은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장애인 오빠를 쓸모없는 벌레 취급하고 결국 자살에 이르게 한 여성이 주인공이고, 그 여성의 처지와 관점에 공감하게끔 하는 이 영화가 2016년 제17회 장애인영화제(PDFF)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영화 첫 장면에서 마트 직원인 주인공 ‘서영’은 자기 물건을 팔기 위해 다른 제품을 근거 없이 비방한다. 그 때문에 명예훼손죄를 추궁당한 서영은 그딴 게 대수냐는 눈빛으로 자의 반 타의 반 마트를 그만 둔다. 독한 생존투쟁을 함축한 도입부다. 더욱 대책 없어진 빚에 ‘서영’은 장기 요양 중인 엄마 병원을 찾아가 “엄마, 이제 그만 하자. 엄마 곧 죽을 거잖아. 엄마가 없어지면 돼” 하며 자살을 종용한다. 다음날 엄마는 병원에서 실종된다. ‘연명치료결정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앞으로 현실에서 자주 보게 될지 모를 장면이다.
엄마는 실종되었지만 서영의 독한 짓에 대한 윤리적 평가는 실종되지 않았다. 서영의 아는 스님이 그 윤리적 평가를 환기시킨다. 술, 담배, 고기는 물론이고 서영과의 잠자리도 마다하지 않는 이 스님은 서영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알선해 준다. 그러면서 절 사람들과 새로 알선해준 공장 사람들에게 서영이 엄마에게 한 짓을 알린다. 법적 처벌은 면할지 몰라도 도덕적 책임은 져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덕분에 서영은 새로 들어간 인쇄 공장 노동자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전개된다. 노동자들과 싸우고 사과하고 부대끼면서 서영은 점점 노동자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서영은 노동조합 결성을 앞둔 친목모임의 일원이 되어 ‘이기심’이 아닌 ‘연대’를 통한 생존법을 배워간다. 엄마에 대한 속죄가 이기적 생존에 대한 반성으로 사회화 된다는 점에서 매우 뜻 깊은 대목이다.
하지만 스님은 그런 속죄의 사회화를 원치 않는다. 대신 천도제를 통해 서영이 엄마에게 저지른 죄업을 상기시키고, 그 죄의식을 이용하여 서영이 노동자들을 배반하게 만든다. 서영이 “말썽피우고 사장과 싸우는 놈들과 어울린다.”는 말을 듣고 스님은 “사장이 나한테 일임했다”면서 잘리기 싫으면 노조준비모임을 파괴하라고 지시한다. 어떻게 그러냐는 서영의 항변에 스님은 “네가 잘못한 게 있어서 그러는 거다”며 엄마에게 행한 죄를 상기시킨다. 스님이 원한 건 속죄가 아니라 죄진 너 자신을 알라는 거다. 그렇게 죄의식으로 자의식을 채운 서영은 생존을 위한 악의 화신이 되기로 결심한다.
영화 <파란 입이 달린 얼굴> 스틸컷.
서영이 지체장애를 가진 오빠에게 ‘나 좀 살아야겠으니 사라져 달라’고 엄마에게 한 독한 말을 반복한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도 남은 빚을 청산하려면 집을 내 놔야 하니 오빠가 결혼해서 나가면 좋겠다고 했지만, 대놓고 오빠를 무시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오빠 ‘영준’은 지체장애가 있지만 쓸모없는 피부양자 취급을 받을 만큼 중증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동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며 혼자 신변처리도 하고 요리도 잘한다. 무엇보다 유능한 미싱사로서, 봉재공장이 계단 있는 지하에 있어 동료들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자기가 없으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다고 여길 만큼 자존감이 높다. 결혼해서 나가면 좋겠다는 동생의 말에 ‘영준’은 이참에 “내 능력을 알아봐주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협력업체 디자이너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싱에 손까지 다치자 영준은 자신의 장애와 무력함에 절망한다.
손을 다쳐 화장실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쓰러져 잔 다음날 아침 스님과 외박하고 돌아온 ‘서영’은 기저귀를 던지며 “비싸니까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 물 많이 먹지 말고” 라며 모욕을 준다. 엄마에 이어 서영이 자기도 버리려 한다고 여긴 영준은 “너 내가 당장 없어졌으면 좋겠지?” 한다. “너랑 결혼할 사람 만났어. 그 집 잘 살아서 너만 괜찮으면 당장 결혼하재. 여자가 지적 장애인이야, 서로 의지하고 살면 되잖아. 착하더라”는 서영의 장애인 비하에 영준은 “바보니까 착하겠지” 하며 또 다른 장애인 비하로 받아치고, “너보다 나아. 사지 멀쩡하고 집에 돈도 많고 너 먹여 살리겠다니까 감사하다고 해”라는 서영의 독설에 영준은 아무 말 없이 싱크대에서 과도를 꺼낸다. 영준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서영을 노려보며 보란 듯이 자신의 경동맥을 과도로 찌른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부양의무와 빚의 무서움뿐만 아니다. 이 영화는 ‘너 자신을 알라’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서영이 노동자 연대를 통한 생존 방식을 포기하고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말라’는 신자유주의적 이기심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걸 단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봐선 안 된다. 서영의 선택은 인쇄공장 사장의 사주를 받은 스님이 서영의 영혼에 ‘너 자신을 알라’는 명령어를 이식시킨 결과다. 너는 원래 너 살자고 엄마를 버린 아이다. 그게 너다. ‘나 살아야겠으니 너 좀 사라져라’가 너의 정체성이다. 서영은 스님에게 이식받은 ‘너 자신을 알라’를 오빠 영준에게 전달한다.
그전까지 영준은 자신의 장애를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서영이 분가를 요구하면서부터 영준은 자신의 장애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급한 마음에 디자이너에게 포로포즈를 하다 거절당한 것이 변곡점이 되었고, 한쪽 손을 다쳐 신변처리가 힘들어진 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이 퇴락의 과정에 영준의 지체장애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디자이너의 칭찬을 애정으로 착각한 것은 장애인이어서가 아니라 한국 남성의 종적 특성이며, 사고로 인한 일시적 손상은 치료하면 그만이다. 하필 그때 스님의 ‘너 자신을 알라’를 이식받은 서영이 영준에게 ‘너 자신을 알라’, 너는 남의 돌봄 없이는 똥오줌도 못 가리는 쓸모없는 존재다, 너에게 취향과 애정은 사치고, 돈 많은 집 지적장애 여성과 결혼하는 게 유일한 살 길이라고 혐오의 말을 퍼부은 게 영준을 자살로 몬 것이다.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2013년 7월 간질장애를 가진 박진영(남. 39)씨가 주민센터를 찾아가 사회복지 담당자 앞에서 흉기로 자기 가슴을 찔러 목숨을 끊었다. 박 씨는 다섯 살 때부터 간질이 있었다. 가족의 도움으로 생활해 오다 4년 전부터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수급비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에서는 간질장애의 경우 3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장애등급재판정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거 간질장애 3급이던 박 씨는 2010년 장애등급재판정을 통해 4급으로 등급이 하락했고, 2013년 장애등급재판정에서는 아예 ‘등급 외’ 판정을 받았다. 등급 외 판정은 장애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는 1급부터 4급까지의 장애인을 근로무능력자로 판단하여 수급자격을 부여하며, 장애등급이 나오지 않는 경우에는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조건부 수급 혹은 수급자격이 박탈된다. 박 씨는 자신의 장애가 왜 등급 외 판정을 받았는지 설명을 요구했지만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박 씨는 자신의 유서를 세 부 복사하여 청와대, 의정부경찰서, 의정부시청에 보내달라는 말과 함께 복지담당 공무원 앞에서 자신의 심장을 찔러 죽었다.
장애등급심사에는 고해성사 같은 면이 있다. 타자에게 자신의 몸과 행위에 대해, 자신의 결함과 무능력에 대해 전부 말해야 한다. 그렇게 고백한 결함과 무능력에 의거하여 자기를 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장애등급심사는 고해성사와 흡사하다. 장애등급제는 ‘너 자신을 알라’는 명령어를 내면화하여 장애인들 스스로 결핍되고 무능력한 자기 인식을 갖도록, 그래서 복지를 ‘구걸’하고 복지정책에 ‘복종’하게 만드는 통치 효과를 일으킨다. 거듭된 장애등급심사에서 박 씨는 자신의 장애와 무력함을 증명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때로는 과장해서 자신의 무능력을 고백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등급 외 판정을 받고 기초생활수급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돌봄마저 끊겨 버렸을 때 그는 진실로 자신의 장애를,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 속 간질장애인 박 씨와 영화 속 지체장애인 영준은 닮았다. 두 사람은 돌봄의 끈을 끊고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는 타자 앞에서 보란 듯이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그때서야 장애인으로서의 자기 인식에 이른 것일지 모른다. 장애를 정의하는 것은 ‘고립’이다. 원래부터 장애인이란 없다. 장애는 돌봄의 관계가 끊어지고 고립된 개인에게 던져진 ‘너 자신을 알라’가 만들어낸 인식의 형성물이다.
자기 인식의 비극은 장애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지체장애인 오빠 영준에게 자기 인식의 파국을 안겨준 서영에게 남은 삶은 어떤 것일까? 노동자들의 연대 공간이던 탁구장에서 동료들을 쫓아낸 서영은 혼자 탁구를 친다. 혼자 치는 탁구가 불가능하듯이 서영이 선택한 고립된 자기 돌봄의 길은 끊어진 길이지, 삶의 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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