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일, 신길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태호 서울교통공사에게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지하철 연착 시위를 벌였다.
지하철에 탑승하기 전 사람들이 '내가 한경덕이다'라고 쓰인 관에 헌화를 하고 있다.
오후 2시 30분, 45명의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신길역에 한 줄로 죽 늘어섰다. 1호선 신길역 플랫폼에는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말이 적힌 관이 놓였다. 한 줄로 늘어선 장애인들이 관 속으로 하얀 국화를 한 송이씩 던졌다. 2001년 오이도역 추락사를 계기로 장애인의 안전한 이동권 보장을 외쳤으나 변함이 없었던 현실, 이어지는 장애인의 죽음을 표현하는 행위였다.
이윽고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한 줄로 지하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들을 본 승객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칸에 있던 승객들은 웅성거리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려 자리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렸다. 시위자들이 지하철에 탑승하며 한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내가 한경덕이다!”
2017년 10월 20일, 고 한경덕 씨는 신길역 1·5호선 환승장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가 계단 밑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한 씨는 외상을 입어 혼수상태에 빠졌고 2018년 1월 25일, 결국 단 한 번을 깨어나지 못한 채 사망했다. 당시 신길역은 유족들에게 '휠체어 리프트를 타기 전에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가 일어난 사고이므로 휠체어 리프트 이용과 관련 없다'며 사고의 책임을 고인에게 돌렸다. 이들은 사고가 난 다음 날인 10월 21일, 신길역 측은 한 씨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로) 망가진 전동휠체어를 치우라”고 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는 “서울시, 서울교통공사 등이 한 씨 죽음의 주범”이라고 지목했다. 휠체어 리프트가 빈번한 추락사고, 고장 등을 일으키며 이용자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계속해서 지적해왔지만 이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서울장차연 등 장애인단체는 서울시의 사과, 지난 2015년 서울시가 발표한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아래 서울시 이동권 선언)’ 이행 촉구, 김태호 서울시 교통공사와의 면담 등을 외치며 지난 5월 23일 광화문역, 5월 29일 충무로역, 6월 1일과 2일 신길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점거하며 시위를 했다. 6월 14일에는 신길역부터 시청역까지 1호선 여섯 구간을 휠체어 이용 장애인 28명이 타고내리며 지연시키는 '지하철 타기 행동'을 했다.
이러한 장애계의 요구 끝에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과의 면담이 6월 21일 성사됐다. 하지만 김 사장은 이들과의 공개사과를 끝내 거부했다. 법적 규정은 다 지켰고, 추락사에 대한 책임은 소송에서 판단할 문제라는 이유였다. 또한, 장애계와 박원순 시장이 2015년 함께 만든 서울시 이동권 선언에서 밝힌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사에 1동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 역시 지킬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공사비용 문제와 현재 지하철 구조상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교통공사는 수행기관일 뿐이므로 엘리베이터 설치 건은 서울시의 의지에 달렸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서울장차연은 △신길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참사에 대한 공식 사과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1동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 등을 요구하며 박 서울시장의 새로운 임기가 시작되는 2일, 신길역에서부터 서울시청까지 지하철 타고 내리기를 또다시 반복하며 관련자들의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했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총 150명으로 그 중 휠체어 이용자는 45명이었다.
지하철 내 연결통로가 너무 좁아 스쿠터 등을 탄 사람들은 겨우 그 통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가 넓어 휠체어가 빠질까봐 활동가들이 휠체어를 들어 올려야 했다.
휠체어 이용자들이 지하철에 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하철이 휠체어를 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하철 내에서도 이동은 자유롭지 못했다. 연결통로의 높은 턱이 이동을 지연시켰다. 급하게 임시 이동 발판을 설치했고 스쿠터 이용자들은 겨우 턱을 오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통로가 문제였다. 이들의 스쿠터가 통로에 끼어버려 오도 가도 하지 못했고 활동가들이 휠체어를 앞뒤로 밀었다. 덜커덩 소리를 내며 스쿠터가 크게 흔들리고 나서야 통로를 겨우 지날 수 있었다. 이렇게 모든 휠체어가 탑승해 한 줄로 정렬하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오후 2시 57분, 지하철은 신길역을 겨우 떠났다.
몇몇 시민들이 지하철 지연에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한 시민은 “지금 이 지하철 하나 때문에 전체 노선이 밀린다. 도움을 얻으려면 동정을 얻어야지. 이렇게 하면 시민들의 동정을 못 얻는다”며 소리를 질렀다. 이에 한 활동가가 “우리는 동정을 얻으려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시민이 한 휠체어 앞에 서서 “시민을 볼모로 잡지 말라”고 외치자 한 활동가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쏘아붙였다.
한 여성시민이 시위대를 향해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한 시민이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에 걸쳐 있는 휠체어 이용자를 밀어내려고 하다가 활동가들에게 제재를 당했다.
서울역에서는 지하철 문을 무리해서 닫으려는 시도가 반복됐다. 하차 중이던 휠체어 이용자들의 몸이 문 사이에 끼는 위험 상황이 벌어졌다. 지하철 보안관 등에게 “문을 못 닫게 하라”고 요구했으나, 같은 시도가 이어졌다. 열리고 닫힘을 반복하는 문 때문에 시간이 더 지연되자 승객 중 한 명이 “나도 자살하면 이 지하철 멈출 수 있는 거냐”고 소리치며 지하철과 스크린 도어가 설치된 틈 사이로 기어들어 가는 위험한 상황도 벌어졌다. '지하철 타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 사람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분리조치를 요구했지만, 지하철 보안관은 “경찰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지하지 않았다.
오후 3시 50분. 서울역에서 다시 탑승한 이들은 목적지인 시청역에 1시간 20여 분 만에 도착했다. 시청역에서 지상으로 오르기 위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단 한 대뿐이었다. 첫 사람부터 마지막 사람까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지상으로 모두 올라가는 데에만 30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휠체어 이용자에게 지하철은 타는 것뿐만 아니라 역에서 벗어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대중교통이었다.
오후 5시, 시민청에 도착한 이들은 박원순 시장을 향해 “언제까지 장애인이 휠체어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어야 하느냐. 이용자가 중상을 입고, 사망하더라도 끝까지 소송으로 가야 사과를 할 것이냐”고 물으며 요구안에 대한 박원순 시장의 입장을 밝히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영철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한경덕 씨의 죽음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 모두의 죽음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이 휠체어 리프트를 타려면 죽음을 각오하고 타야 한다는 뜻”이라고 언급하며 “나도 3년 전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던 중간에 멈췄다. 결국은 한 시간 만에 고쳐졌고 나는 올라올 수 있었다. 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런 공포를 느끼며 살아야 하느냐. 고 한경덕 님의 죽음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며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기자회견 중간 오성규 서울시장 비서실장은 요구안을 받아가면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오늘 이 상황에 대해서 들었고 ‘절대 그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최대한 해결책을 찾아서 책임 있게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경석 서울장차연 공동대표는 “서울시는 위험한 휠체어 리프트를 장애인들이 이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 자체가 서울시의 잘못이며 이를 인정한다면 고 한경덕 씨와 그 유족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98일간 그가 홀로 병원에서 사투를 벌일 때, 그리고 죽고 난 뒤에도 어떠한 방문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서울시가 이동권 선언에서 약속한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한 약속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 선언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라 1년간 같이 논의해서 만든 선언이다”라고 강조하며 “박원순 사장을 만나서 선언 등에 대한 약속 이행을 담보 받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