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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농인이 사회를 향해 얘기할 때, 우리 삶은 정말로 변해요”

작성자 2018-06-25 최고관리자

조회 380

 

 

 

“더 많은 농인이 사회를 향해 얘기할 때, 우리 삶은 정말로 변해요”
[인터뷰] 박원순 선거캠프 ‘다양성위원’으로 활약한 농청년들을 만나다
등록일 [ 2018년06월22일 16시55분 ]

지난 6월 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3선이 결정되던 시각,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 다섯 명의 농인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들은 박 후보의 당선을 함께 기뻐했고, 수어통역사는 당선 소감을 실시간으로 통역했다. 이들은 5월 31일부터 박 후보 캠프에서 '세대공감본부 다양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왔다. 박 후보 공약을 수어로 통역해 영상을 만들고, 투표 독려 캠페인 영상도 만들었다. 박 후보 선거캠프에는 매일 수어통역사가 있었고, 캠프 창단식, 각종 지지선언식 등 캠프 내 행사에서 수어통역이 빠지지 않았다. 박 시장의 '얼굴 이름(수어 이름)'을 만들어준 것도 바로 이들이다. 

 

농청년들은 왜 박 후보 선거캠프에 들어왔을까. 이들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바꾸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국에서 농‘청년’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선거캠프에서 활동했던 김하정, 이진경, 정나라, 진생재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1529653683_54700.jpg 박원순 시장과 함께 '사랑해요'라는 뜻의 수어를 하고 있는 진생재, 이진경, 김하정, 김희민 씨(왼쪽 두번째 부터)

 

박원순 시장 당선 축하드려요. 선거캠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셨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김하정(아래 하정): 당연히 될 줄 알았어서(웃음). 애초에 선거캠프 참여한 것도 당선 지원보다는 '여기에 농인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던 의도가 더 컸어요. 

 

원래부터 박 시장님을 지지했어요. 따릉이도 그렇고, 성 평등 지하철 광고가 부쩍 늘어난 것도 그렇고, 확실히 이전 시장들과는 다르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었어요. 하지만 주변에서 농인이 개인적으로 특정 인물을 지지하는 걸 많이 보지 못해서 저도 마음속으로만 지지하고 있었죠. 그러던 차에 박원순 캠프의 홍서윤 세대공감 본부장님이 '다양성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어요. 

 

이진경(아래 진경): 저는 하정 언니가 이거 하자고 불러서...아마 오늘 온 사람들 다 그럴걸? (웃음). 농인이 캠프에 들어가면 박 시장님뿐만 아니라 서울시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농인 관련 정책을 고민하게 될 거고, 다른 농인도 '아, 우리도 정치 참여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겠다 싶어 들어오게 됐어요. 그래서 한다고 했어요.

 

정나라(아래 나라): 박원순 시장님이 계셨던 지난 6년간, 시민들과 소통하며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시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다니던 회사가 정당 공보물이나 현수막 디자인을 많이 했거든요. 그때 한 정당에서 제 이름만 빌려 갔어요. 장애인 조직을 정당 안에 만들었는데 지체장애인 중심이니까, 농인인 제 이름을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은 거였어요. 막상 가도 제 목소리를 내기보다 지시받는 느낌이 강했고요. 그런데 박원순 캠프에서는 장애 유무나 유형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동등하게 받아들여 지더라구요. 그래서 더 열심히 활동했어요.

 

농인의 정치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진경: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농사회가 굉장히 좁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치관이 다르면 배척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보니 드러내길 꺼리게 되는 거죠. 이번에도 캠프에 같이 들어가자고 권유했더니 '그런 거 위험하지 않냐'라며 정치색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진생재(아래 생재): '협회'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려고 하면 우선 의사소통부터 막히잖아요. 예를 들어 어느 정당에 입당하더라도 막상 가면 수어통역이 없으니 활동은 못 하고 당적에 이름만 올리고 끝나는 거예요. 정당 활동가지 안 가더라도, 기본적으로 정치 관련 정보 자체가 농인이 접근하기 너무 어려워요. 관심을 가지려야 가질 수가 없는 거죠. 

 

하정: 맞아, 그러고 보니 나 저번에 당내경선에서 투표 못 했어. 투표를 전화로 하라고 문자가 왔더라고요. ‘나 청각장애인이라 전화로 투표 못 한다’고 문의 문자 다시 했는데 답이 안 왔어요. 이게 ‘부정투표’를 막기 위해 목소리 녹음을 해야 해서라던데...이런 제도도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농인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어떤 사회적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하정: 제 경우를 보면, 제일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건 인터넷, SNS상에서예요. 의사소통 구애가 없으니까, 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되는 거죠. 의사소통이 정치참여의 핵심이자 가장 기본적인 요소일 것 같아요. 

 

나라: 지난 6월 8일, 박원순 시장님이 대학로에서 ‘청년과의 대화’ 행사를 했어요. 그때 제 친구는 대학로 놀러 갔다가 우연히 봤대요. 직접 참여해서 얘기하진 못했는데, 그날 수어통역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재밌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런 식으로 농인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정: 그날 저 아는 오빠는 대화에 직접 참여했어요. 제가 ‘행사에서 수어통역 제공되니까, 가서 하고 싶은 말 하라’고 하니까 정말 갔더라고요. 그 오빠 성격에 밤새 잠도 못 자고 '무슨 말 하지' 엄청 고민했을 거야 (웃음). 그날 가서 ‘서울시에 운영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도슨트(관객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편집자 주)가 설명을 할 때 수어나 문자 통역을 제공해달라’고 했대요. 박 시장님이 그 자리에서 ‘그 부분은 긴급행정명령으로 빨리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답변을 했고요. 이렇게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 지고 실현되는 경험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1529653931_90337.jpg 지난 8일, 대학로에서 한 농청년의 이야기를 수어통역사(맨 왼쪽)를 통해 듣고 있는 박원순 시장.

 

생재: 저는 선거권 가졌을 때부터 지역 정치에 관심을 가졌지만, 통역이 없어 소외될까 봐 선뜻 참여하지를 못했어요. 의사소통을 위한 환경이 잘 구축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진경: 맞아요. 그냥 입 다물고 듣고만 오는 건 의미 없잖아요. 내 의사를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죠. 수어통역사나 속기사를 거치게 되면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 시간을 기다리고 경청하는 분위기도 중요할 것 같아요.

 

농'청년'을 위한 정책 제안이 있다면?

 

진경: 저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입사 원서를 넣으려고 찾다 보면, ‘전화 업무’가 들어간 경우가 대부분이예요. 그러니까 거기부터 아예 지원 자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농청년들 중에서는 아예 사무직은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고요. 이건 엄연한 차별이죠. 이런 부분들이 시정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취업한 다른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전화도 전화지만 회의할 때 정말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구화(입으로 말하는 것-편집자 주)를 하는 친구인데, 회의 때 문자통역조차 없다 보니 여러 사람 입 모양을 정신없이 따라가야 한 대요. 회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죠. 농인이 취업할 때 통역 지원이 꼭 필요해요.

 

나라: 제가 지금 다니는 회사는 대표님이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것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세요. 그래서 수어통역사를 채용하고, 회의 때는 문자통역을 지원해요. 이런 지원들이 사업체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됐으면 좋겠어요. 

 

하정: 퇴근하고 나서 여가생활 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즐기고 싶은 것도 많은데. 퇴근하면 보통 저녁 여섯 시 이후인데, 이때는 수화통역센터도 다 퇴근한 시각이에요. 수화통역센터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학교에 다니거나 일하는 청년들은? 거의 이용을 못 하는 거죠. 몇몇 구에서 ‘야간 수어통역 서비스’가 생겼어요.  이게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되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컴퓨터 배우려고 학원 갔다가 퇴짜맞았어요. ‘청각장애인이라 수업 따라오기 힘들 거다’라면서 수강을 못 하게 하는 거예요. 제가 ‘알아서 수어통역사나 문자통역사 모셔올 테니 그냥 자리만 내달라’고 했는데도, ‘다른 수강생들에게 방해될 것 같다’고 끝까지 못 오게 했어요. 농청년은 스펙을 쌓으려야 쌓을 수가 없어요.

 

생재: 저는 문화에 관심이 많거든요. 영화, 연극, 뮤지컬, 스포츠 관람에 더 나아가 스포츠 관련 강좌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문화생활을 다른 사람들처럼 즐기고 싶은데, 문자나 수어통역이 없으니까. 너무 아쉬워요. 적어도 시립, 구립 등 공립인 곳에서부터라도 신경을 좀 썼으면 좋겠어요.

 

하정: 세종문화회관으로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외국인이 나와서 노래하기에 앞서 곡 소개를 하는데, 제 앞 좌석 등받이에 달린 모니터에서 한국어 자막이 나오는 거예요! 그거 보고 좀 충격받았어요. 그렇다면 한국인이 나와서 노래하거나 이야기할 때 한국어 자막도 얼마든지 띄울 수 있다는 거잖아요? 

 

1529653993_57267.jpg 이진경, 정나라, 김하정, 진생재(왼쪽부터) 씨가 '박원순 캠프의 농아인 청년'이라는 문구를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네 사람은 여전히 할 말이 많다. 할 일도 많다. 다른 사람이 대변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내 ‘목소리’로 계속 이야기할 거라고, 네 사람은 입을 모았다. 원하는 직업을 갖고, 여가생활을 즐기는 삶. 네 사람은 더 이상 ‘어쩔 수 없지’라며 이 삶을 포기하지 말자고 제안한다. 우리도 이 사회의 일원이라고, 우리의 목소리에 응답할 것을 사회에 요구하자고. “더 많은 농인이 사회를 향해 이야기할 때, 우리의 삶은 정말로 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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