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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주인은 나', 그 당연한 말의 무게

작성자 2018-06-22 최고관리자

조회 403

 

 

 

'내 삶의 주인은 나', 그 당연한 말의 무게
[기획] ‘국가인권위원회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 실태조사’ 조사원 칼럼 ⑥
등록일 [ 2018년06월21일 16시04분 ]
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인권위가 중증장애인거주시설 45개, 정신요양시설 30개를 무작위로 추출해 2017년 7월부터 10월까지 거주인 1500명을 대상으로 1:1 면담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거주인의 10명 중 6명이 강제입소 당했으며 20년 이상의 장기 거주자도 상당수였다. 자신이 퇴소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거주자 절반은 즉시 나가서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비마이너는 앞으로 총 6회에 걸쳐 당시 실태조사에 조사원으로 참여했던 이들의 글을 싣는다. 보고서 속의 수치화된 언어가 차마 전달하지 못한 경험의 언어를 이들의 글로 전한다. 조사원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그곳의 냄새를 기록하여 전함으로써 그들이 만났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이제까지 접한 ‘시설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스펙터클’을 넘어, ‘시설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 순서

① 노규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② 최한별 비마이너 기자

③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북지부장

④ 강혜민 비마이너 기자

⑤ 밍구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⑥ 민선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작년 7월이었다. 그날 조사를 위해 찾은 ‘정신요양시설’은 오랜 시간 내가 살았던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70년대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데, 그날 처음 알았다. ‘정신요양시설’로 불리는 곳에 가는 것도 처음, ‘정신장애인’을 만나 조사하는 것도 처음이라 긴장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있는 큼직한 등나무 쉼터가 반가웠다. 볕은 뜨거웠지만, 유난히 하늘이 화창해서 그런지 초록빛 잎들이 참 싱그러웠다. 푸른 잔디밭 주변 곳곳에 몇 개 동으로 나누어져 있는 건물들의 외관도 쾌적했다. 음침할 거라는 예상이 깨지면서 ‘괜찮은 곳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첫인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은 곳?

 

시설장 사무실로 가니 큼직한 가족사진이 눈에 띄었다. 각종 표창장과 사진들을 통해 대를 이어 복지‘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 고생하신다며 시작된 시설장의 인사말에서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고 있음을 알아달라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수고하시라는 말을 뒤로하고, 오늘 내가 조사할 첫 번째 거주인을 만나러 개방동으로 향했다.

 

그분은 거리 노숙을 하던 중 단속되어 정신병원에서 1년을 지내다 이후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정해진 시간에 근처로 외출할 수 있지만, 연고가 없는 이곳에서 갈 수 있는 곳은 인근 편의점이 전부라는 이야기에서 쓸쓸함이 묻어났다. 처음 왔을 때 몇 달간 폐쇄동에서 지냈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은 괜찮다며 꼭 폐쇄동을 가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가는 길 거실에 다들 모여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방에도 텔레비전이 있는데 왜 방에서 안 보고 거실에서 보는지 여쭤봤다. 같이 모여서 보는 게 더 좋아서일 줄 알았는데, 모두가 원하는 것을 볼 수 없으니 방 텔레비전은 아예 켜지 않는다는 예상 못 한 답변이 돌아왔다.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곳, 여기가 시설이었다. 언제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던 첫 번째 거주인분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1529565542_89709.jpg 사진출처: 픽서베이

 

점심식사를 하고 두 번째 거주인을 만나기 위해 폐쇄동으로 갔다. 입구에 들어서니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계단에 따닥따닥 붙어 앉아 이쪽을 바라보는 분들이 보였다. 버튼을 누르고 잠시 뒤 문이 열렸다. 그곳에 ‘갇혀’ 지내는 분들에게 외부에서 찾아온 누군가는 그 자체로 반가운 존재가 되었다. 조사할 거주인의 방으로 가는 복도에서 마주치는 모든 분이 너도나도 인사를 해주셨다.

 

그리고 만난 두 번째 거주인은 이곳 많은 사람 중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것만으로 무척 좋아하셨다. 이 만남을 누군가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인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 복잡한 마음이 들면서 그분의 이야기를, 바람을 잘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분의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입소 시기부터 현재 생활, 앞으로의 바람 등 많은 조사항목이 있었는데 이어가지를 못했다.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시간이 흘러 조사를 마쳐야 했다. 나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꾸밈없는 반가움을 드러내며 그분이 기대했을 무언가가 있을 텐데 듣지 못한 게 미안했고, ‘괜찮은 곳 같다’고 생각했던 게 부끄러웠다. 등나무 쉼터와 잔디밭은 여기에서 거주하는 분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그저 창 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풍경에 불과했다.

 

다른 폐쇄동으로 이동해 세 번째 거주인을 만났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시설에서만 지낸 분이었다. 성인이 되면서 오랜 시간 지내온 시설을 떠나야 했고, 이후 어디 어디를 거쳐 지금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표가 붙어있는 서랍에서 사진첩을 꺼내오셨다. 옛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이건 소풍 가서 같이 찍었던 거야’, ‘같이 지낸 언니, 동생들이야’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진 속 앳된 얼굴을 보다 보니 슬퍼졌다. 하나둘 주름이 새겨지고 머리카락이 제법 희끗해진 지금까지 그분이 평생을 살아온 세계는 시설이었다. 그분은 사진첩을 닫으며 어눌하지만 분명하게 ‘시설 밖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 시설은 누군가의 세계였다

 

조사를 마치고 조사원들이 함께 모여 조사과정에서 알게 된 것, 느낀 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정신’, 장애’, ‘시설’이라는 용어에 붙들려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조사가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괜찮은 곳 같다’는 첫인상은 괜찮음의 정도에 대한 판단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런 식의 잣대로 누군가의 세계를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 게 무척 부끄러웠다.

 

그리고 지난해 8월 29일, 세 번째로 열린 탈시설-자립생활대회 참여자들의 외침으로 채워진 벽보에서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문구를 봤다. 예전과 달리 폭력이나 인권침해가 줄었다며 시설이 괜찮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 괜찮아질 거라는 이야기가 제대로 된 응답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라는 거주인들의 위치가 달라지지 않는 이상, 시설은 존재 그 자체로 인권침해이자 폭력일 수밖에 없다. 탈시설-자립생활 요구는 내 삶을 되찾겠다는 선언과 맞닿아있다.

 

활동을 막 시작한 즈음인 2009년, 마로니에 공원에서 탈시설을 요구하는 노숙농성 소식을 접하며, 자립생활‘권’이라는 말이 생소했던 기억이 난다. 10년이 지났다.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이 논의되고 있을 만큼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시설 안의 세계에 ‘갇힌’ 수많은 사람이 있다. 삶을 ‘빼앗긴’ 사람들이 그곳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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