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공공부조 확대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장애인과 가난한이들의 3대적폐 폐지공동행동' 등이 21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빈곤층의 소득하락에 대해 정부는 대책을 세우라”며 청와대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요구안을 전달했다.
올해 1분기 소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하 소득층(10%)인 1분위 가구들의 소득이 크게 감소했다. 이들의 평균소득은 84만 1천원(평균 가구원수 2.27명)으로 지난 연말 발표된 106만원에서 약 24만원이나 하락했다. 게다가 이 수치는 2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인 113만 8천원 조차에도 미달한다. 이들의 평균소득은 작년 1분기와 비교할 때도 12.2%나 하락했다.
이에 대해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은 “이 문제를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빈곤층의 상황은 절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하며 “노동시장 대책만으로 가난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공공부조를 확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 대책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의 수급을 막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조속히 폐지 △주거용재산 소득산정 제외, 재산 소득제 개선 △급여별 선정기준 대폭 인상 △근로능력평가 폐지 등을 주장했다.
2014년 12월 개정된 기초법은 수급자에게 각기 다른 선정기준에 따라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를 지급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수급 신청절차가 까다로워져 빈곤층의 수급신청이 더 어려워졌다. 또한 부양의무자 기준도 여전히 살아 있어 상당수 빈곤층이 복지 사각지대에 몰려 있다. 2015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수급 신청자 중 절반이 넘는 67.5%는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지난해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약속했다. 그 시작으로 2018년 10월부터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현재 복지부가 내놓은 안에는 핵심급여인 생계 및 의료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2022년 11월까지 노인·중증장애인 포함 가구에 대해서만 부분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고 밝혔을 뿐이다.
21일, '빈곤층 소득하락 대책 촉구 기자회견'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습.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기초법은 신청자의 월소득과 재산의 소득환산액 등이 선정기준보다 낮을 때 수급자로 선정하는데, 기본재산 공제액이 너무 낮아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재산이라도 갖고 있으면 수급자 선정에서 탈락하고 만다. 또한, 거주 목적의 집만 재산으로 가지고 일정소득이 없어도, 주거용 집이 그 한도액을 넘으면 그 비용만큼을 소득으로 간주한다. 현재 주거용재산 한도액은 대도시 1억원, 중소도시 6,800만원, 농어촌 3,800만원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중소도시에서 8천만원의 자가주택에 거주하며 소득이 없는 수급권자의 소득 인정액은 월 85만원이다. 그는 이 ‘허구소득’ 때문에 수급자가 될 수 없다.
이 기준들을 통과해 수급자가 되더라도 기초법은 가난한 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각 급여별 선정기준이 낮기 때문이다. 2015년 기초법을 개정하면서 정부는 복지사각지대를 해결하겠다며 최저생계비를 폐지하고 중위소득을 그 지급 기준선으로 삼아 각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15년 최저생계비와 중위소득 간의 관계를 비교하면 큰 변화가 없다. 심지어 생계급여의 경우 2015년은 4인가구 기준 월 134만원이었지만 현재는 월 118만원까지 떨어졌다. 기초법 개정 전 최저생계비 인상률은 평균 3.9%였지만 개정 후 중위소득의 인상률은 2.3%로 되려 하락했다.
기초법의 또 다른 문제는 근로능력평가다. 현재 수급자의 자활사업 참여를 결정짓는 근로능력평가는 연금공단이 2013년부터 실시했다. 그런데 현재 공단이 평가를 맡은 이후 ‘근로능력 있음’ 판정은 5%에서 2013년과 2014년 각각 15.2%, 14.2% 세 배 가량 증가했다. 공단으로부터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은 수급자들은 일을 하는 것이 곤란한 상황이라고 호소해도 이의 신청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수급을 포기하거나 몸에 맞지 않는 자활사업에 참여해 건강을 크게 해치기도 한다.
고 최인기 씨는 이 근로능력평가의 희생자다. 최 씨에게 심장질환이 발견돼 큰 수술을 받은 후 그는 일을 할 수 없게 됐고 수원시로부터 약 10년간 ‘근로능력없음’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일반 수급자였다가 2014년 1월, 자활근로에 참여해야만 수급비를 받을 수 있는 조건부 수급자가 되었다. 공단이 “신체활동 시에는 호흡곤란 증상이 발생함”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무시하고 그의 수술 이력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결국 최 씨는 자활사업에 참여해 청소 일을 해야 했고 건강이 악화돼 일을 시작한지 두 달 만인, 2014년 8월 28일에 사망했다.
발언자들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청와대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게 이들의 요구안과 수급가구 가계부조사 결과 등을 전달했다.
이형숙 장애인과가난한이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부양의무자기준을 조속히 폐지해 빈곤의 사각지대를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광화문 농성장에서 복지부 장관은 우리에게 ‘예산이 반영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약속했다.”고 비판하며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약자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1년이 지났지만 가난한 사람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발언했다.
정승문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나는 수급자다. 그런데 수급비가 너무 적어서 한 달을 살기가 부족해 고통을 받고 있다. 물가가 올랐지만 올해 한 달 수급비는 5천원 올라서 고작 50만 5천원이다. 한 달 식사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집에서 밥에 김치만 두고 먹을 때가 많다. 돈 아끼려고 한 끼만 먹거나 무료 급식소를 찾아가서 밥을 먹어도 한 달 살기가 부족하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어 그는 “법에서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 등을 이야기 하는데 수급비로는 건강한 생활조차 할 수 없다"면서 "진통제 주사를 맞는데 비급여로 인해서 3만원이라는 거금이 지출된다. 수급비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50만원 가지고 한 번 살아봐야 한다. 이들이 실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살아보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