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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만이 최선의 장애인 인권일까

작성자 2021-06-29 최고관리자

조회 511

 

‘탈시설’만이 최선의 장애인 인권일까

[왜냐면] 이기수ㅣ신부·천주교 수원교구 사회복지법인 ‘둘다섯해누리’ 시설장

2000년께 있었던 일이다. 천안교도소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남자 재소자인데 아내는 가출했고, 슬하에 있는 세살도 안 된 딸은 노모가 맡아 키우고 있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아 시설 입소를 부탁받은 것이다. 추운 겨울 잠겨 있는 골방의 문을 여는 순간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아기의 모습이 가슴을 내리쳤다. 곧바로 가족의 동의를 받아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영유아 시설로 보냈다. 지금 그 아이는 고3이 되었다.

 

지난해 한통의 전화를 받고 우연히 만난 사연도 비통스럽다. 그분은 서울 서초구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다. 지적장애 아들이 갑작스러운 이탈 행동을 보이기에 허리에 끈을 묶어 동행한다고 한다. 자신은 암에 걸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아들을 보호해줄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일하는 ‘둘다섯해누리’ 입소를 대기하다 포기한 분의 사연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머니는 아이의 장애수당으로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힘든 고백을 하면서 부모로서 죄책감이 앞선다고 울면서 토로했다. 시설의 입소를 원하는 이들을 모두 받고 싶지만, 현실은 늘 여의치 않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면 그게 곧 행복이다. 가정이건 시설이건 장소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회복지(社會福祉)의 한자어를 잘 풀어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공동체(社會)에서 축복(福祉)을 누릴 수 있느냐의 문제다. 노인요양원도 시설이다. 가정에서 부모님을 부양할 여건이 되지 못하니 가족의 동의를 받아 입소하게 되는 시설이다.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의지로 시설에 입소한 장애인들은 없다. 자립이 가능한 장애도 있지만, 개개인의 장애 정도에 따라 불가능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필자는 ‘둘다섯해누리’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외국 시설 견학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의 장애인 시설을 방문했다. 그들이 보여준 다양한 시설을 보면서 선진화된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낱낱이 살펴봤다. 필자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 시설들에서 최중증장애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최중증장애인이 시설에서 보호를 받고 있음을 공개하기를 꺼렸던 것이다. 다른 경로로 알게 된 사실인데, 그곳의 최중증장애인들은 한국의 요양병원 같은 곳에 머물고 있었다.

 

일부 언론과 복지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선진국의 ‘탈시설’은 우리가 생각하는 ‘탈시설’과 다르다. 물론 장애인 중에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게 좋은 분들도 있지만, 가족의 돌봄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분들도 있게 마련이다. ‘탈시설’만이 장애인 인권을 위한 최선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

 

정치권에서 지난해 말 입법 발의한 ‘탈시설 지원에 관한 법률’의 취지는 좋지만, 획일적인 법률 적용은 위험하다. 무엇보다 10년 안에 모든 시설을 폐쇄한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복지선진국 스웨덴의 경우만 봐도 50년 전부터 ‘탈시설’을 준비해왔지만 최중증장애인까지 모두 해당하는지 의문이다.

 

오랜 세월 장애인 보호를 위해 현장에서 일하며 시설이라면 일단 장애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불법장소로 치부하는 시선도 감당해오곤 했다. 하지만 전국에는 선진국 못지않게 잘 정비된 ‘시설’에서 열과 성을 다해 장애인들을 돌보는 활동가들이 적지 않다. 당장 정부 차원에서 현실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탈시설’이란 단어는 대단히 공허하다. 오히려 장애인들에게 최적의 환경과 정성을 제공하는 시설들을 찾아 모범 시설로 벤치마킹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게 현실적으로 훨씬 타당하지 않을까? 지금 눈앞의 불을 어떻게 끌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장애인 인권과 복지는 거스를 수 없는 숭고한 가치이지만, 이를 위한 정책은 섬세하게 이어져야 한다. 법안 발의와 함께 치열하게 논의되길 기대한다. 그래야 진정한 장애인 인권과 복지가 실현될 수 있다.









 

출처 :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01244.html#csidx8fb2b0ef7b703c2bdeab3dfbfd1d018 onebyone.gif?action_id=8fb2b0ef7b703c2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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